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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Dec 05. 2020

네 번째 하와이 : 4일 차

아침에 지아가 눈을 뜨자마자 물었다. "아빠, 지금 몇 시야?" 

"응, 10시야"

"10시? 그럼 5시 넘었어?" 

오, 질문 참신하다. 7살이면 숫자랑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하나. 아냐, 너무 빨리 알면 이런 후레쉬한 질문이 안 나오겠지. 

"응, 지금 5시 넘었어. 이제 일어날 시간~!"


어젠 북부지역으로 올라가 보기라도 했지, 오늘은 Poipu 죽돌이 모드다.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할 내일을 위한 충전 구간, 여행의 Dummy Day. 부엌에 CJ 재고가 여전히 많이 쌓여 있었지만, 오늘 오전은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 오늘을 위해 아껴둔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Anuenue Cafe. 아눼눼~ 이름 드립은 그만.


중학교 꼰대 사회 선생님 납셨다. "anuenue는 하와이 무지개라는 뜻이야. 저기 간판에도 무지개 있지? 여기 음식들은 하와이 로컬 농장에서 가져온 재료만 쓰고, 여기 셰프는 과거 콜로라도에서~ 블라블라~" 설명을 해주는데, 오늘 애들 컨디션이 영 꽝이다. 이런 퐁당퐁당 컨디션을 알기에 하와이에선 이틀 연속 무리한 인정을 절대 잡지 않는다. 나의 시뮬레이션 상 4일 차쯤 되면 아이들 심신이 최저점을 찍을 것 같아 오늘은 스케줄을 뻥 비워놓은 하루였다. 삼성전자 SCM T/F 출신 다운 나이스 forecasting~! 확률상 열흘 중 하루쯤 아프다면, 오늘 아프거라.


하와이 무지개, 아눼눼~
나름 맛집인지 웨이팅 중. 지우야, 옷 코디 누가 해줬니.
이런 음식들을 이런 가격에 팝니다. 아눼눼.
기분 별로
이 분은 기분 더 별로
이런 비주얼의 음식을 애들은 거의 다 남기고, 집에 가서 라면


오후는 It's Poipu Time, AGAIN! 4일 연속 찾으니, 부산 다대포 같은 이 친근함 무엇.

오늘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요일 감각을 잃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요일이었다. poipu 지역 사람들은 구역예배를 여기서 하나 보다.


바닷가 쪽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 속에서 turtle이란 단어가 귀에 박혔다. 거북이가 수영을 하고 있다며 바닷가쪽 사람들이 come on, come on~ 손짓을 하니 모래사장에서 스핑크스처럼 부동자세로 있던 사람들이 고프로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어가서 짝퉁 고프로, 대륙의 실수 '짭프로'를 가져올까 하다가 그 사이 거북이가 사라져 버릴까 봐 애들과 전속력으로 거북이 쪽으로 뛰어갔다. 눈으로 때려 박아야지.


모래사장 위에 박제처럼 누워있는 거북이는 많이 봤어도 수영 중인 거북이는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500살은 되지 않았을까. 장수의 비결이 뭔가요. 이 거북이는 확실히 쇼맨쉽이 있었다. '여기가 포토존입니다'하며 찍을 사람은 다 찍으라는 듯, 적절하게 멈춰 서서 포토타임도 선사하고, 사람들 사이를 아주 천천히 수영하며 '젊은이, 고생 많아. Latte는 말이야!' 하는 듯, 모두에게 왠지 모를 감동을 주며 지나갔다. 저 분의 라떼는 1700년도가 아니었을까. 우리도 덕분에 2~3분의 긴 시간 동안 5m 거리 내에서 거북이와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짭프로를 챙기지 않은 게 좀 아쉬웠지만, 오늘 인스타에 #poipu #turtle을 치면 많이 나오겠지. 


땡큐, 거북 할아버지. 오늘 우리 가족 쉬는 날이라고 추억 하나 만들어주러 오셨네요. 상한 해파리, 삭은 홍어 같은 불량식품 드시지 말고, '바다의 우유' 굴 같은 영양식품만 잡수시며, 지금까지 산만큼만 더 사시길.

 

명절 앞둔 목욕탕 인파
엄마 찾니? 아까 마우이 쪽으로 날아가셨어~
아저씨, 염색 잘 나왔네~ 윤기 보소
하늘 맑은 거 보소
투캅스
아빠, 나 거북이랑 수영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한 후,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점심 보단 조금 더 까다롭게 고른 나의 Pick은 Pizzetta. 카우아이에는 한국 식당이 없다. 그나마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무수비랑 피자다. 무수비는 몇 끼 했으니, 오늘은 피자로 갑시다.


Pizzetta도 가게는 크지 않았지만 나름 유명한 맛집이라 여행객들이 가득했다. '인생 최고의 피자를 이탈리아가 아닌 카우아이에서 만났다' 정도는 에바지만, 카우아이에서 1박 이상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한 끼는 이 곳을 추천한다. 워커힐 피자힐 보다 나은 듯.


poipu에서 pizzetta까진 5분 거리. 
여기가 Pizzetta~!
cosy 한 내부.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던 투 따우전 나인틴
자다 깨서 계속 엄마한테 안겨있는 지아
과반수 이상이 나온 몇 안 되는 사진
쓰리 떰즈 업
이하 동문


지우는 맛있다며 허겁지겁 다 먹자마자 나가자고 했다. 아, 쫌. 분위기 좀 내자.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한창 터프가이실 때, 어머니와 커피숍에 가면 어머니가 커피, 프림, 설탕을 살포시 넣고 스푼을 저으며 세상 우아하게 향을 맡으시는 동안, 아버지는 그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시고 "다 뭈으면 가자."라고 하셨다고. 지우에게 할아버지의 원샷 원엑싯 DNA가 흘러간 듯. 음식은 식전빵까지도 최고였다. 카우아이를 짧게 가시는 분들은 Duke's랑 Pizzetta 두 곳만 기억하면 될 듯.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Ross에 들렀다. 4일 차만의 첫 쇼핑이다. 정말 건전한 가족 여행이다. 난 면티를 몇 개 골랐고, 세 모녀는 매니큐어를 샀다. 아이들은 꾸웩 꾸웩 멱따는 소리가 나는 서핑 돼지 인형을 살까 말까 10분쯤 고민하다가 결국 안사고 나왔다. 잘 못사는 건 아빠 닮았구나. 


역시 애들은 배가 부르면 기분 좋아진다
결국 안사고 나왔는데, 지금도 살 걸 후회하고 있는 '꽥꽥 대는 서핑 돼지'
집에서 매니큐어 바르기


집에 돌아와서 사온 면티들을 입어보니 하나같이 양아치 같다. 난 왜 이리 양아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걸까. 와이프의 후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내일 모조리 반납하는 걸로. 착하게 삽시다.


이렇게 Dummy Day 4일 차도 안녕~!




https://brunch.co.kr/@boxerstyle/188

https://brunch.co.kr/@boxerstyle/187

https://brunch.co.kr/@boxerstyle/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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