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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02. 2016

월간 김창우 : 2016년 7월

#1 핸드폰 교체


폴더폰 참 오래도 썼다.


다른 건 다 적응했는데, 8기가라 사진을 찍거나 앱 하나 더 깔려고 해도 저장용량이 부족하다는 건방진 메시지가 뜬다. 매번 하나를 삭제해야만 다른 하나가 추가되는 패턴이 지겨워졌다.


친구들이 밴드에 뭐 올렸다, 텔레그램에 올렸으니 참고하라고 톡이 와도 이미 그런 앱들은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급할 땐 사진들을 다 옮긴 후 지우고 밴드 깔아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야 할 땐 밴드를 다시 지웠다. 이 무슨 원시 본연의 자태란 말인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빡친 외침, Enough!


그래서 블랙베리를 살지 갤럭시를 살지 고민했다. 한 마음씨 좋은 친구가 이런 나의 기호를 알고 본인이 예전에 쓰던 블랙베리를 줘서 잠시 일탈을 꿈꿨으나, 유심 사이즈가 안 맞다. 덴장. 유심을 사러 갈바에야 그깟 기계 얼마 한다고 그냥 핸드폰을 바꾸자고 마음먹었다.


막판까지 블랙베리와 갤럭시 사이에서 갈등을 심하게 했다.


그러다 문득 양적 물질의 경우 정반합의 변증법 법칙이 적용된다던 옛 고등학교 도덕 선생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모순되는 다른 주장인 반(反)이,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에 통합된다는 가르침.


그렇게 정반합(正反合)으로 최적의 조합, 갤럭베리가 탄생했다!


이종교배의 잘된 예, 갤럭베리



#2 Root Beer


아무리 고급 와인이라도 알코올이 들어가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저주받은 미각 탓에, 좋아하는 술 종류는 없다. 어차피 마셔야 하는 자리면 배가 부르지 않은 독주가 좀 더 나을 뿐.


그런데 내게도 좋아하는 술이 생겼다. 루트 비어.


사실 맥주와 유사하게 오크통 숙성과정을 거쳐서 Beer란 이름이 붙었을 뿐, 무알콜 음료이다.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맛은 좋게 표현하면 닥터 페퍼와 유사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파스 맛이 난다고 한다. 호불호가 강한 음료인데, 약간 번태적 성향의 나의 입맛엔 Very Very 짝 달라붙는다. 게다가 술을 잘 못 마시니 이름에 Beer가 붙은 음료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내게 남자 남자스러운 짜릿함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루트 비어를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수입맥주 샵, 대형 할인점, 인터넷 등등 다 뒤져봤지만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하와이 여행에서나 마셔야 하나,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태원에 갔다가 foreign food mart를 찾아갔더니 가게 앞 최고 노른자위 진열매대 위에 A&W root beer가 뙇! 역시 이태원은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12개들이 한 박스를 입양해왔다. 이 무더위에 사무실 시스템 에어컨으로 부족할 때 Beer 한 캔씩.


이미 다 마셨다. 이태원 또 가야겠다.



#3 타이어


출고 후 주행거리 5000km를 넘고부터 타이어 컨디션이 별로인 것을 느꼈다. 타이어 교체하는 돈은 왜 이리 아까운지 차일피일 미루다 얼마 전 운전하다 갑자기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드디어 타이어를 갈러 갔다. 차를 맡기고, 난 정비소 사무실에서 달달한 다방커피 한 잔 빼서 아이패드를 켜고 서울생활 #4를 쓰고 있었다.


잠시 후 정비사 아저씨들이 모여서 우리 차에서 뺀 바퀴를 보고 웅성거리더니 대장 아저씨가 날 와보라고 한다.


바퀴 네 짝의 상태를 모두 보여주며 엄청 과장된 제스처를 하며, 하마터면 주행 중 타이어 터질 뻔했다고 한다. 난 이 아저씨가 어디서 약을 파시나 생각했다. 업셀링을 위한 영업 멘트가 기본이긴 하지.  하지만 나도 나름 삼성전자 마케팅 출신에 닳고 닳은 사람 아닌가. 세일즈 토크에 넘어갈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고 자부하며, 덤덤하게 그랬나요? 되물었다.


하지만 진짜 네 바퀴 모두 심각한 균열 상태였다.


타이어가 4개가 전부 저렇게 찢어진 상태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휠 얼라인먼트가 안 맞는 상태라고 했다. 바퀴 네 개가 모두 평행한 상태가 아니어서, 사람으로 치면 안짱다리로 지금까지 달리다 보니 타이어 바깥 부분이 모두 다 닳고 찢어져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이런 대목에서 귀가 한없이 얇아지는 나,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차 핸들을 놓으면 차가 옆으로 조금씩 휘어지며 달렸다. 결국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타이어 및 정비를 다 맡겼다. 결국 또 호구 짓을 한 것일까. 그러기엔 타이어 찢어진 부분들이 내 눈에도 너무 선명했다.


타이어 교체도 중요하지만, 휠 얼라인먼트 정비가 필수적이란 부분 체크.




#4 화분


좋아하는 후배들이 사준 화분. 거의 2년을 수돗물도 안 먹이고 정성스레 생수 부어주고 햇빛에도 적당히 노출시켰는데, 몇 달 전부터 잎이 하나씩 떨어지더니 몇 개 안 남은 잎마저 생기를 잃고 색이 누렇게 변했다.


물과 햇빛은 충분했는데 뭐가 부족했을까. 식물도 감정을 느낀다기에, 나 특유의 저음으로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몇 번 속삭여줬는데, 이 녀석 수컷 성향이었나 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잎들도 화가 난 듯 다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영양제도 꽂아주고 비타민도 빻아서 물에 타서 좀 먹였다. 난 아침을 굶어도 이 녀석 물은 서운하지 않게 잘 챙겨줬다. 이 녀석만 살아난다면 나의 컨디션 좋은 인분이라도 거름으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성이 통한 것일까. 오늘 새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만큼 기뻤다. 이제 내가 사랑한다는 말만 안 하면 잘 크겠지.


돋아난 새 싹. 다시 살아나라.



#5 하늘


요즘은 사람들이 고등어를 잘 안 먹나 보다.

하늘이 아침저녁으로 맑다.


사무실에서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루트 비어 한 캔 마시면, 이 곳이 하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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