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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31. 2016

월간 김창우 : 2016년 8월

폭염


8월 한 달간 내게 가장 많은 문자를 보내준 베프는 국민안전처였다. 폭염이라며 노약자, 어린이들 야외활동 자제하고 충분히 수분 섭취하고 물놀이 안전에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더운 건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데 부지런히도 보낸다. 그래도 매번 문자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니 최소한의 성의는 있다. 분명 신입사원 레벨에서 보냈을 텐데, 만약 나였으면 전 국민 대상 문자 젤 뒤에 장난삼아 ㅜㅜ 이모티콘 하나 붙여서 보낸 후, 윗분들께 끌려가서 린치를 당했을 듯하다.


이렇게 재난 수준의 8월 무더위가 온 세상의 수분과 생동감과 모기를 앗아갔다. 길거리 사람들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고, 부산행 영화에서 본 좀비들이 여기저기 현실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무더위에 실성한 사람들은 본인의 그림자를 보고 그 밑에서 쉬고 싶어 그림자쪽으로 뛰어가는 이상 행동마저 할 지경에 이르렀다.


폭염 뉴스는 계속해서 1994년 여름과 비교를 했다. 맞다, 내가 고 3이었던 그 해 여름도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과 산들바람, 그리고 초원 위에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바람개비가 길을 안내해주는 그런 언덕이 아니었다. 샥스핀을 잔뜩 쌓아두고 있을법한 냉동공장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대퇴사두근이 바짝 긴장할만한 가파른 경사의 언덕이었다. 


냉동공장 옆 언덕위의 하얀 학교


그냥 올라가도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데, 폭염이 절정이었던 그 해 여름은 끔찍했다. 항상 3분 전에 언덕 밑에 도착한 무리들은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언덕을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갔다. 교문 앞의 강구, 게포, 뽈라구 선생님들의 몽둥이가 무서워서라기 보단,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모면할 때의 스릴감도 언덕 전력질주에 한몫했다. 정문에 도착하면 온 몸의 땀구멍들이 최대치로 열리며, 교복이 짜면 물이 나올 만큼 땀으로 축축해졌다. 


50명 중 20~30명은 그렇게 뛰어올라와 자리에 앉았으니, 에어컨도 없던 교실은 아비규환이었다. 다들 교복 상의를 벗고 미친 듯이 부채질을 해댔고, 부채 바람을 타고 겨땀내 악취가 교실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김정일이 말한 서울 불바다가 바로 우리 교실이었다.


그해 여름엔 눈병도 유행했는데, 너무 더워 집으로 가고 싶은 친구들은 눈병 난 친구들의 눈을 일부러 비벼대며, 차라리 눈병 걸려 야자에 빠지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나도 눈병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친구의 눈을 한 번 비볐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눈병이 옮질 않았다. 그 녀석, 눈병이 아니라 그냥 거대하고 더러운 눈곱이었다.


올여름 폭염은, 문 닫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도 죽지 않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악취와 후끈함 속에서도 밤 12시까지 언덕 위의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던 1994년의 여름을 떠올리게 해 준 것을 제외하고는, 의미 부여를 해 줄만한 건덕지가 전혀 없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Temp-Single Daddy


와이프가 브라질로 16일간의 출장을 떠났다. 난 2주간 저녁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고 매일 밤과 주말 육아를 솔로로 해보게 되었다. 다행히 애들이 아프지도 않았고, 고군분투하는 아빠가 안쓰러웠던지 떼를 많이 쓰지도 않았다. 가장 시원하면서 애들이 얌전해지는 장소가 차 안이라, 주말이면 일단 애들을 차에 태우고 여기저길 다녔다. 


우린 열대야와 싸우다가 브라질로 화상통화를 하면, 와이프는 춥다고 잠바를 입고 전화를 받았다. 이건 뭐지? 상식적으로 삼바의 나라 브라질이 한국보다 시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중에 와이프에게 우리가 다닌 곳을 보여주기 위해 인스타그램(changwoo.son)을 시작했고, 페이스북에서 헤어졌던 친구들, 후배들의 흔적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거기 모여 있었구나. 하나씩 재미 삼아 올리다 보니,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젊은 트렌드를 따라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확실히 흔적을 남기는 포인트와 내용이 달랐다. 시대의 흐름은 배워야 한다. 후배들이 올리는 맛있는 음식, 여행 사진, 갑자기 출몰한 쌍 무지개 사진들에 열심히 좋아요! 를 눌러보며, 이 곳에서 나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난 프리챌때부터 SNS에는 잘 적응했다.




교환할 책이 있어서 서점에 갔다가, 이번 달에 내가 책을 몇 권 샀냐고 물어봤더니 20권이란다. 많이도 샀구나. 그중 내 책은 두 권, 나머지는 모두 아이들 책이었다. 내가 퇴근했을 때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나 때문일까 책 때문일까.


내 책 값은 좀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eBook 세상에 뛰어들었다.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던 아이패드에 리디북스를 깔고 책들을 골랐다. 내가 읽고 싶던 웬만한 책은 다 있구나. 첫 번째 다운로드할 책은 신중하게 골랐다. 


그동안 내 인생 책은 신경숙의 ‘외딴방’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품을 떠나는 어린 자식의 손에 천 원짜리를 꼬옥 쥐어주면서 “배고플 때 곯지 말고 야구르트 사 먹어라”하던 대목은 여전히 내 가슴속을 후벼 판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짜릿하게 읽었던 책은 따로 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 눈을 피해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던  ‘혼자뜨는 달’.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이 읽기엔 폭력, 야함, 유머, 스릴이 넘치고 넘쳤다. 내가 2 회독을 하고 친구 녀석한테 이 책 죽인다며 빌려줬다. 그 친구도 수업시간에 몰래 보다가 선생님에게 걸렸다. 선생님이 무슨 책이냐고 펼쳐본 부분이 지지리 재수 없게도 그 책의 가장 야했던 장면이라 “대가리 피도 안마른 쉐끼가”하면서 귀싸대기를 엄청나게 맞던 장면도 떠오른다. 


eBook 세상에 머리를 올리고, 첫 번째 책으론 제격이다. 옛 추억을 되살려 근무시간에 몰래 봐야겠다.


심지어 무료다


운동


8월은 체육관에 제법 나갔다. 하지만 조금씩 폼이 올라온다 싶다가도 3일만 처묵처묵 하면 익숙한 몸매와 체력으로 곧장 돌아온다. 나이 든 몸뚱이에는 관성의 법칙이 제대로 적용된다. 


8월 5일 금요일. 일주일 만에 찾은 체육관에서 삐걱대는 몸을 스트레칭으로 억지로 펴주고 있었다. 갑자기 관장님이 스파링 한 번 하겠냐고 묻는다. 난 아무 생각 없이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13년 만의 스파링이다. 나의 현재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관장님이 가볍게 물어 본거라, 나도 정말 가볍게 대답했다. 약간 설레기도 했다. 


링에 올라가려는데 헤드기어를 쓰란다. 오케이, 헤드기어는 써야지. 그러고 나니 마우스피스를 끼란다. 가볍게 할 건데 마우스피스까지? 관장님께 “피스 꼭 물어야 돼?” 물어보니, “형님, 상대 빤찌 셉니다. 형 옥수수 다 털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역시 유머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상대를 보니 덩치가 아주 좋은 근육질이었다. 나이도 나보다 10살이 어렸다. 어차피 가볍게 할 거니 체급 안 맞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땡!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70% 수준으로 잽을 툭툭 던져봤다. 상대도 툭툭 던진다. 서로 가볍게 치고 맞았다. 오랜만에 링에 서니 거리감과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정타도 제법 허용했지만, 나도 맞은 만큼은 돌려준 것 같았다. 상대가 속수무책으로 맞는 몇 가지 콤비네이션을 알게 되었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이상 2라운드는 이런 움직임으로 좀 더 몰아붙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1라운드를 마쳤다.


땡!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입을 벌리고 헉헉대긴 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이제 80~90%로 끌어올려볼까 하며 펀치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친구의 2라운드도 1라운드와 달랐다. 몇 대 맞더니 갑자기 막 치고 들어왔다. 지금의 난 이런 힘 좋은 인파이터를 상대로 같이 인파이팅 할 힘도 부족했고, 돌려내며 아웃파이팅을 할 스피드와 눈도 사라진 상태였다. 


예전엔 그냥 얼굴로 웬만한 펀치를 다 받으면서, 뒷발에 힘 딱 주고 안밀리면서 치고받은 것 같은데, 역시 나이를 먹으니 내구성이 가장 문제였다. 그 순간 제대로 빵! 한 방 맞고 다운이 되었다. 다운될 거면 빨리 주저앉았어야 했다. 천천히 무릎을 꿇다가 빵! 한 대 더 맞았다. 무방비에 맞은 이 펀치가 너무 제대로 들어가서, 순간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2라운드 남은 시간은 2분. 너무 큰 펀치가 들어갔고 현재의 내구성으로 더 이상 치고받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 시점에 스파링을 그만뒀어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하며 허그 한 번 하고 물러났어야 했다. 하지만 시합을 하면 그런 말이 잘 안 나온다. 괜찮냐고 물어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box. 그리고 난 2라운드에서 2번의 다운을 더 당했다. 지금까지 운동하며 다운을 몇 번 당해보지 않았는데, 이 날 한 라운드에서만 3번의 다운을 당했다. 


옥수수가 다 털릴 수 있다는 말, 사실이었다.


나중에 관장님께, 현재 내 컨디션을 알 텐데 왜 체급도 안 맞고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펀치가 장난 아닌 저런 상대랑 스파링 시켰냐고 묻자, “전 형님이 당연히 안 한다고 할 줄 알았죠. 저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했다. 이미 난 내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돌아온 대답이란… 


다음엔 스파링 하라고 하면, 누구랑 시킬 건지부터 물어보자.




글쓰기


글을 좀 더 많이, 그리고 길게 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글을 언제 쓰고, 왜 쓰냐고.


나의 대답은 심플하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글을 써보고 있다.


지난 2월 하와이에 다녀온 후, 와이프 깜짝 생일 선물로 책을 만들었다. 10부를 만들어서 가족들, 친한 친구들에게 나눠줬는데, 립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다들 재밌게 읽어 주셨다. 특히 와이프와 장모님이 키득키득거리며 읽는 모습과 부산의 아버지가 감동하며 읽는 모습이 큰 촉매제가 되었다. 그리고 넘버원 지우마저 그 책을 다 읽고, 아빠 글 재밌고 하와이 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졌다. 거기서 시작되었다.



베스트셀러 “그래도 사랑”의 정현주 작가님과 인연이 닿아,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원시적인 질문을 드렸다.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출퇴근 시, 자기 전, 주말에, 누군가를 기다릴 때, 짬이 생길 때, 이것저것 막 써보기 시작했다. 주제도 없고 형식도 없다. 그냥 아무 주제나 잡고 써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과거 기억들로부터 소재를 꺼내서 Aloha Hawaii, 10년 전 유럽여행, 서울생활, 월간 김창우 등등을 써보고 있다.


1년에 100개씩 300개만 써보자고 다짐했다. 지금은 그 트레이닝 과정이다. 3년간 300개 정도의 글을 쓰고 나면, 글쓰기가 제법 늘어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혼자 쓰고 차곡차곡 쌓아두는 건 동력이 없어,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 50여 개의 글을 연습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그 연습과정이 크게 힘들진 않다. 이제 250개만 더 써보자. 물론 2~3일에 하나씩 올리면 그 숫자는 채울 수 있겠지만,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수줍은 성격이라 일주일에 하나 정도씩 올리다 보니, 읽는 사람 불편하게 글 하나의 분량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페이스는 계속 유지해볼 생각이다.


3년간 300개를 썼는데도 생각만큼 글이 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가족들에겐 40대 초반의 아빠 글들은 훗날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거나 막 써본다.


이렇게 2016년 8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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