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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Nov 04. 2024

선생님, 팔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요

사람은 새로운 사람, 장소, 물건, 음식 따위에 곧장 흥미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글을 봐도 그렇죠. 문장 구조를 비틀거나 새로운 말을 지어내면 관심을 보입니다. 그게 다 엉터리라도 말이죠. 


이런 모습을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 하고 끌려다니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물건을 팔아먹는 사람은 돈이라도 벌겠지만 말이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언제나 한 자리에 있고, 흔한 것이라도 내가 그것을 새롭게 보고 다시금 느끼는 사람이라면 세상은 지루할 틈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건 나를 긴장하게 하고, 어떤 건 나를 설레게 하니까요. 


말과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새로운 말도 함부로 미치지 못하는, 바탕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익숙한 말이 가진 아름다움에 몇 번이고 놀라는 사람이고요. 


소중히 다뤄야겠습니다. 나보다 더 뿌리가 깊은 것들을.




오늘 고칠 문장 

선생님, 팔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요.


병원 게시판에서 본 글입니다. 어떤 치료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상담 사례인 것처럼 꾸며 쓴 글이었죠. 어떻게 써야 자연스러울까요?




1) 입말에 가까워야 자연스럽다


[보기] 선생님, 팔이 제 기능을 하지 않아요.


[고침 1] 선생님, 팔이 움직이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께 [보기]처럼 말하는 환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글은, 특히 대화글은 실제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게 쓸 때 가장 생생합니다. 


‘기능하다’는 제품을 소개하는 글이나 사용 방법 안내글에 쓰던 말인데, 이제는 일상 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잡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입으로도 ‘움직이다’, ‘하다’, ‘쓰다’ 따위를 모두 ‘기능하다’ 하고 말하게 되겠죠.




2) 내 말투에 더 가깝게


[고침 1] 선생님, 팔이 움직이지 않아요.


[고침 2] 선생님, 팔이 안 움직여요.


내 말투에 가깝게만 써도 글맛이 살아납니다. 글이 글에 머물지 않고, 사람이 묻어나는 글이 되죠. 


머릿속으로 ‘기능하다’를 떠올려 보세요.

‘움직이다’를 떠올려 보세요.


무엇이 그려지나요? 무엇이 더 살아있다 느껴지나요?


덧붙여 ‘기능하다’는 문장에서 아주 빼버려도 될 때가 많습니다. 이를 대신할 우리 말이 풍부할뿐더러 대게 ‘기능하다’는 쓸데없기 때문입니다. 


아래 보기들에서 ‘기능하다’를 고쳐보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ㄱ. 이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작업을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 한다.)

ㄴ. 이 기계는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는 데 기능한다. (→ 쓰인다.)

ㄷ. 외부 침입을 감지하고 막는 데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 막도록)

ㄹ. 이 식물은 벌레를 잡는 데 기능한다. (→ 잡는다.)


선생님, 팔이 안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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