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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종목 변경, 그리고 번아웃

by 너굴이

앞서 연구 주제를 불가피하게 조금 변경해야 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네, 출전 종목이 변경된 것입니다. 뭐, 아주 드라마틱하게 모든 것을 다 바꿔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커미티 멤버를 다시 짜야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저 큰 틀은 유지하되 세부적인 주제와 분야를 좀 바꿨습니다. 지도교수는 흡족해했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더 전도유망한 분야라나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전도유망한' 분야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예전 주제에 비해 보이는 것도 많고 세상의 관심이 많이 주목된 것도 알겠는데, 제가 뒤쳐져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게다가 제 건강상의 이유로 신경쓰고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나날들, 부모님 두 분 모두 갑자기 큰 수술을 하심에 따라 제가 감당해야 했던 낮밤들로 인해 제 계획에 미미하나마 변동이 생긴 점 등을 아주 무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와장창 깨지는 일이 바로 코 앞에서 생겨도, 세상은 제 사정을 봐주지 않죠. 연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하드라마 같은 초여름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겨우 몇 밤 잔 것 같은데 어느덧 가을이 왔어요. 가을이 왔다는 것은 새로운 academic year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연차가 더해질수록 점점 저의 일은 다양하게 바빠지고 있었습니다. 거의 디폴트 값인 수업조교, 연구조교와 맞물려 추가 작업(주로 공저나 프로젝트)은 항상 툭툭 튀어나왔지요. 박사과정생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시간 관리인데요.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다양한 일을 맡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본업인 박사 논문 연구에 들이는 시간이 부족한 현상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다른 일은 주로 돈을 받고 하는 일이거나 데드라인이 명확히 정해진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모월 모시까지 학부생 과제 채점을 끝내거나, 성적을 입력하거나, 수업을 가르치거나, 출판사나 기관에 최종 원고를 보내거나 학회 페이퍼를 제출하거나, 등등이요. 이 모든 일은 남이 정해준 데드라인이 있고,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박사생 본인의 연구는 스스로 데드라인을 설정해야 하고 자신과의 대화만으로 이뤄진 고독한 여정입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고삐를 죄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졸업해야 한다 - 라는 추상적이고 머나먼 데드라인은 있지만, 눈앞에 닥친 다른 급한일에 밀려 잊히기 일쑤입니다. 또한, 남과의 협업이 아니라 오롯이 나와의 대화이자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매우 쉽습니다. 구몬 학습지 선생님처럼 지도교수가 1주일에 한 번 성과를 물어봐주지도 않고 피드백이 자동으로 날아오는 시스템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연구자 본인이 스스로의 뺨을 후려쳐가며 정신줄 붙잡고 있어야 하고 지도교수를 적절히 활용하여 필요한 것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지도교수는 이 모든 여정을 함께하는 '스승'과 같은 존재이고 논문 커미티 멤버 역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들입니다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논문의 중간단계 혹은 최종 완성 단계에서 결과물을 검토해 주는 사람들이지 논문의 개별적 생산라인에서 생산자인 '나'를 감독해 주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산더미같이 쌓인 다른 일을 처리하다가 지도교수가 '미팅이나 할까'라고 가볍게 던진 말에 죽어라 벼락치기해서 미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미리 해 놓은 작업이 없을 테니 당연히 연구 성과에 대한 미팅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겠지요.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전략을 짰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방지할 목적도 있었지만,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러다가 곧 우주로까지 날아갈 것 같은 지도교수를 지구에 붙여놓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할 말이 많은데, 지도교수를 잘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도록 하지요). 전략이라고 해봤자 별 것 없습니다. 그저 지도교수의 기억 속에서 혹은 하루에도 몇 백 통의 이메일이 오는 그의 inbox에서 나의 존재가 묻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어차피 지도교수의 수업/연구 조교를 하고 있으니 만날 일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연구와 관련하여 업데이트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메일을 날리고 (도움을 구할 일이 있을때 주저하면 안 됩니다), 지도교수가 답이 없으면 메신저로 연락하고, 가끔은 쫓아다니고 (스토커처럼 보이지 않게 조심하면서요), 미팅하자고 주도적으로 날짜를 잡고, 지도교수의 정신줄이 어딘가 나가있는 것 같으면 그에게 우리가 같이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등, 별 것 아닌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제 연구에 관한 '업데이트'는 잊혀질 만하면 종종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지도교수는 절대 먼저 닦달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지도학생이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러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할 테니까요. 일이 잘 풀려도 그에게 알려주고 잘 안 풀려도 알려주면서 끊임없이존재를 어필했습니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다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수업조교를 하지 않기로 말이죠. 사실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이 있지만, 이걸로는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캠퍼스 안 기숙사에 살기에 망정이지 학교 밖에서 살았다면 비싼 주거비로 인해 일찍 굶어 죽었을 거예요. 혼자 살 때는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보기도 하고 크게 지출할 일이 없었지만, 점점 이 도시에 가족과 함께 정착하면서 살림이 늘어남에 따라 필요한 돈도 많아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사정이기 때문에 대부분 수업/연구조교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합니다. 물론, 수업 조교를 하면서 가르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티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수업조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험 과제 채점이라도 하려고 들면 1주일 정도는 제 연구를 올스탑한 채 80명,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에세이를 채점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제 연구에 바로 돌입하기가 힘들어지고요. ChatGPT처럼 24시간 불철주야 답도 해주고 피곤함도 느끼지 않는 기계라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저는 아직(?) 사람입니다.


게다가, 이곳도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는 법칙이 아주 잘 적용되는 곳이다 보니, 한 학기에 꼭 2-3명씩 생기는 '다루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잘못 걸리는 순간 정말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솟습니다. 그 비용이 수업조교 월급에 포함된 것은 아닌데 말이죠. 꼭 이런 어려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인원을 다 관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입니다. 그 일이 끝나면 내 지친 마음을 달래야지, 먹어야지, 운동해야지, 또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원기옥을 모아야지... 그러다 보면 짧디 짧은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또 내 연구가 밀립니다. 이런 시간/에너지 소모를 생각하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수업조교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원래는 본격적으로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마지막 2학기 동안만 수업조교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냥 시기를 앞당겼어요. 정말로 조용히 제 연구에 집중하고 싶었고, 더 이상 '해야 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능력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다 잘할 수 없다면 제일 덜 중요한 것부터 버리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미 가을학기 수업 조교는 내정된 상태라 중간에 취소할 순 없었어요. 다행히 이 수업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업이라 잘 넘어갔습니다. 천만다행인 일이었지요. 왜냐하면, 가을학기부터 각종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휘몰아쳤기 때문입니다. 논문 커미티 멤버 중 한 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을 학회에서 (혼자) 발표하기 위해 먼 걸음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아직 능력치 낮은 머글에 불과해서 남들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도교수처럼 끊임없이 번뜩이는 질문과 두둑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이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오면 좋겠지만, 저는 아직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기획해야 하고 외워야 하고 몸에 익도록 연습해야 겨우 준비한 것의 80% 정도를 내보일 수 있는 머글입니다. 네, 맞아요. 그 학회 발표 하나를 위해 준비한 시간이 길었다는 뜻입니다.


지도교수와의 공저를 위해 이미 돌아가고 있던 '제2의 공장'은 진척이 더디지만 일단 공장 부지를 계속 점유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일 욕심 많은 지도교수는 또 다른 간단한 공저를 제안합니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벼운 일도 아니었어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저는 아직 마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초안을 만들기 위해 또 별 헤는 밤 동안 머리를 쥐고 골몰하고 자료 조사를 하고 겨우겨우 글을 적어나갑니다. 그 와중에 펠로쉽으로 1년 참가하는 프로그램의 최종 보고서를 내느라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글을 써야 했습니다. 때마침 폭설이 내려 계획한 여행이 밀렸으니 다행이랄까요. 이 보고서를 쓰고 여행을 가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미친 듯이 글을 써재꼈습니다. 아아, 글이 안 써질 때 한 글자 더 적는 것은 왜 이토록 힘들까요. 아주 먼 옛날처럼 먹물 갈아서 붓으로 글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손가락 하나 들어 자판만 치면 되는 것을. 머리에서 정돈되지 않은 생각은 좀처럼 뇌의 영역을 벗어나 입이나 손가락 끝으로 전달되길 거부합니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꾸역꾸역 일을 마치고 짧은 여행을 보내고 돌아오니 지도교수는 또 다른 공저를 하자고 아이디어를 냅니다. 해맑게요. 아아, '제 n의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이젠 몇 번째 공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만, 연구와 관련해서는 복수의 공장을 돌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2-3개의 공장이 돌아가는 것도 이미 충분히 벅차거든요... 하지만 능력치 출중하신 우리 팬더곰 선생께서는 이미 수십 개의 공장을 돌리고 외주까지 주고 계시니, 그 앞에서 2-3개의 공장으로 버겁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하네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모든 공저와 프로젝트들이 크고 작게 저의 연구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름부터 새로운 연구 주제로 방향설정을 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각종 연구와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신선하고, 새롭고, 조금은 설레고... 그러면서도 기나긴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로 (연구) 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다 보니 빨리 생산된 결과는 먼저 내보내기도 하면서 보상받는 느낌도 들고, 그랬습니다. 모두 제가 1 저자로 참여하는 것이다 보니 훨씬 더 주인의식을 갖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고 데이터 수집, 분석, 이론적 틀 생성 등에 있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숨통이 트이는 줄 알았죠.






늘 그랬듯이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아니, 착각이라기보다, 저를 잘 알지 못한 채 예단한 성급한 결론이었어요.


아직은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빰을 만지기 전 어느 날, 갑자기 번아웃이 와 버렸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많았습니다. 전년도 가을/겨울부터 찾아 나선 데이터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전 연구주제때 겪었던 어려움과는 다른 성격의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이전에는 데이터가 없어서 문제였다면, 이제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어느 부분을 들여다봐야 연구질문에 가장 적합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였어요.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그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수많은 옵션 중 취사 선택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낫다고 위안하며 이것도 들춰보고 저것도 들춰봤지만, 제가 정말로 구하고 싶은 데이터는 또 장벽에 가로막혀 구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나 기관을 통해 데이터를 구입할 생각도 했지만, 그 또한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고요 (데이터 1년 구독 비용이 2만 불이라니요!!). 연구를 위한 기금 모금 (fund-raising)까지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개인이 그 데이터를 살 수는 없고 학교와 같은 연구기관을 통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bureaucracy에 막혀 될 일도 안 될 확률이 높죠.


지금 시점에서 그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새로운 연구주제와 관련한 '데이터 찾아 삼만리' 역시 이전에 했던 실수(?)를 많이 닮아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데이터란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다면 대체재를 찾으면 될 것인데, 어디엔가 '아름답고 이상적인' 데이터가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어쩌면 데이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공해야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버거워 잘 만들어진 데이터를 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박사논문에 활용한 데이터는 결국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습니다. 제 필드워크와, 정책 원문 분석과, 기존에 존재하는 수량화 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저 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제 논문도 비로소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단단한 자신감을 얻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또 데이터 이슈에 막혀 나의 아름다운 계획이 좌절되는 것 같아 적잖이 실패감을 느꼈습니다. 대체재가 많으니 구하러 가면 될 일이지만, 언젠가부터 갑자기 전원을 꺼버린 밥솥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를, 그 누군가의 한 마디에 크게 쳐 맞고 눈물을 줄줄 흘리다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렀죠. 이 모든 일이 불과 1주일 만에 발생한 일입니다. 네, 번아웃이 찾아오고 만 것이지요 (그 해 여름 번아웃에 관해서는 제가 다른 작품으로 쓴 글들을 참고해 주세요. Soulache, Again: https://brunch.co.kr/@boyish-aaron/27)


단순히 연구과정에서 겪는 흔한 부작용(?)이라 생각했었지만, 그 해 여름 내내 상담가와 심도 있는 상담치료를 진행하고 저에 대해 박 터지게 고민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심신의 안정을 뒤흔들 정도로 큰일을 겪어도 당시에는 괜찮은 줄 알고 지나가는 편이라는 것을요. 그러다가 6개월, 길게는 1년 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다 못해 다리가 하나 부러지는 수준의 부상을 입습니다. 내상을 입은 줄 모르고 오랫동안 저를 방치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걸려 부러지고 마는 '지연 반응'을 겪는 것이지요. 제 몸도 비슷합니다. 코치나 트레이너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훈련이나 수업에서 진행하면 진행하는대로 다 따라가다 보니 제 역치를 잘 모르고 의지 충만한 채 근육을 쥐어짭니다. 그러다보면 피로가 쌓이고 미세한 부상이 축적되어 어느날 갑자기 악화된 상태를 마주하고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예전 처음으로 급성 우울증을 앓았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은 사뭇 달랐습니다. 첫 우울증을 앓던 해의 여름과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곳에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고도 지혜로운 상담가의 발 빠른 처치로,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 (성과 따위 묻지 않고) 치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캐나다의 문화와, 학교 내에서 이용 가능한 여러 가지 제도 (i.e., 안전망), 늘 저를 지지해 주는 지도교수, 그리고 이 험난한 길 위에서 늘 손잡고 있어 준 짝꿍 덕분에, 그 해 여름은 생각보다 즐겁고 충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학교 제도 하에서 합법적(?)으로 휴식을 허락받았기에, 들로 산으로 더 열심히 다녔고요. 박사과정 시작하고, 아니, 석사과정부터, 아니, 어쩌면,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 처음으로 죄책감을 덜고 열심히 쉬며 공부 외의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번아웃은 우울증으로 번지지 않았고, 상담가도 놀라워 할 정도로 빨리 회복되어 여름이 지나가기 전 연구전선으로 복귀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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