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놀기 좋아하고 활발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놀이터가 아닌 집 안에 앉혀놓고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녁에 공부시키기 위해 낮에 노는 시간을 준다고 해도 저녁이 되면 또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은 ‘본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당연하다. 이런 ‘10대 극초반’ 어린이를 책상 앞에 딱 앉게 하고, 그의 집중력까지 덤으로 가져오기 위한 필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우리 집 공부법은 ‘엄마표 융합 수업’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과학’을 과학으로 끝내지 않고, ‘체육’을 단지 체육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과학 시간에 필요한 다양한 실험과 그 외 활동들을 미술과 연계해서 진행하고, 체육 시간에는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과학 실험들도 함께 진행하곤 한다. 과학이지만 마치 미술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즐겁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체육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 실험 같은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혁신적인 교육 방법이 많은 선생님들을 통해 연구되고 있다. 한 교시에 45분이라는 틀을 깨고 90분 수업으로 과목 간 통합 수업을 하는 등 다양한 수업 방법들도 몇몇의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놀이나 통합 위주의 수업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학습력이 낮아지고 있다든가,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의 학습 격차가 크다든가 하는 등의 여러 비판들은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개인에게 알맞은 학습법을 찾는 것은 개인의 몫이 아닐까 싶다.
학습과 놀이의 그 애매한 지점, 즐겁지만 결국 학습의 결과가 두뇌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기발한 교육 방법이 우리 집에도 필요했다. 그래서 나도 매일 같은 방법으로 지루한 공부를 ‘더 지루한’ 방법으로 하는 것보다는 한 번씩 변화를 줘 보자는 마음으로 ‘엄마표 융합 수업’을 진행해봤다. 물론 매일 변화를 주어 공부하게 돕는다면 정말 아름답겠지만, 내 아이디어에도 한계가 있고, 어쨌든 ‘공부’는 ‘공부’이니 특별한 방법으로 진행하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부분만 ‘특별하게’ 진행해 보기로 했다.
과학 시간에 아이가 가장 지루해 했던 부분은 식물 파트였다. 식물 별로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환경에 따라 식물의 모습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 밤아는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교과서의 그림을 보며 간단한 설명을 마친 후, 함께 집 근처 보라매공원 호숫가로 나갔다. 그곳에는 부레옥잠도 있고 연꽃도 참 많다. 초등학생이 과학 공부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 그 날만큼은 특별히 아이 손에 내 휴대폰을 쥐어주고, 교과서에서 봤던 식물들을 발견하면 카메라로 찍으라고 했다. 밤아는 평소 절대 휴대폰을 내어주지 않던 엄마가 선뜻 휴대폰을 주니 ‘이게 웬일인가’ 싶어 굉장히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컴퓨터로 옮긴 후 큰 모니터로 사진을 함께 보며 설명하도록 시켰다. 덤으로 컴퓨터 타자 연습도 할 겸 식물 이름을 키보드로 쳐보라고도 시켰다. 물론 밤아에게는 타자 연습, 나에게는 키보드로 한글 자모 찾으며 식물 이름을 외우라는 의도였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식물, 얕은 물가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 물 밖으로는 안 보이지만 물 속에 잠겨서 살랑살랑 물결 따라 움직이는 식물 등 밤아는 열심히 설명하며 즐거워했다. 밤아에게는 본인이 찍은 사진 설명이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부한 내용을 엄마 앞에서 쏟아내는 기특한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래. 너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너의 뇌세포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사진도 찍고 컴퓨터로 자료를 만들어 설명까지 하는 형이 부러웠던지, 밤아 동생도 따라해 보려고 하는 모습이 흐믓하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던 가정학습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공원에 나가기 위해서는 날씨가 좋으면서도 스케줄이 없는 날을 잘 골라야 하지만, 어렵게 한 번 나갔다 오면 정신적으로 리프레쉬 되기도 하고, 아이는 엄마랑 산책했다고 좋아한다. 일부러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비눗방울도 가져가고, 아이스크림도 사줬다. 하지만 사실은 과학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끄집어내며 실제 식물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한 내용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감히 확신해본다.
사회는 일단 밤아가 좋아하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읽게 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게 했다. 고학년이 되면 유구한 한국사의 서막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책도 읽어보고, 관련 영화 ‘명량’도 집에서 함께 봤다. 그랬더니 ‘생즉필사 사즉필생’(‘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 말씀)을 외치며 동생과 전쟁놀이를 했다. 전쟁이라는 소재로 놀이를 한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유익하지는 않지만, 꼭 정서적으로 접근한다기보다는 책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해전 모습을 회상하며 놀이로 승화시키는 중이라고 애써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한 도서라기보다는, 역사에 대해 거부감을 없애기 위한 도서로 우리 밤아에게 참 좋은 도서였던 것 같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한 권 사오면 30분도 안 되어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게 했고, 서점에 갈 때마다, 또는 인터넷으로 쿠폰 찬스 써서 몇 권씩 구입해 숨겨뒀다가 중요한(?) 순간에 한 권씩 꺼내주기도 했다.
밤아는 책에서 본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역사의 한 부분을 골라 자신만의 만화로 다시 그려보기도 했고,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한동안 한국사에 빠져 본인이 왕이 되겠다며 ‘시간 여행으로 왕이 된 밤아’를 그려 대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어쨌든 독서와 독후활동을 빙자한(?) ‘나만의 한국사 만화 그리기’ 활동과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기 같은 미술 활동을 통해 한국사에 흥미를 붙이게 했으니 절반은 성공한 것 같았다. 이제 만화책으로 본 재미있는 한국사에 깊이를 더해 줄 시기가 올 텐데, 흥미 위주의 공부에서 진정한 학습으로 가는 과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