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새봄은 열린 마음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봄 앞에 '새'를 붙여 새봄이라고 부른다. 새 여름, 새 가을, 새 겨울은 없다.
봄의 어원과 그 의미 우리말 '봄'의 어원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의 명사형 '옴'(來)이 합해져서 '블+옴'에서 'ㄹ'받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봄'이 된 것으로 보아 우리말 봄의 의미로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우리말 봄은 보다(見)라는 말의 명사형 '봄'에서 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수를 지나 봄이 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생명의 힘이 솟아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며, 동물들도 활기찬 움직임을 하는 것들을 '새로 본다'는 뜻인 ‘새봄’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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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어원을 찾아보면 '새봄'을 애초의 봄이란 말이 생긴 시작점이라고 하는 설명도 있다. '새로 본다'는 새봄의 준말로 봄이 되었다는 의미다. 따스함이 온다는 의미의 봄도, 새로운 것을 본다는 봄도 모두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새봄의 준말로 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던 시절에도 왠지 봄에는 '새'가 붙어 새봄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리고, 봄을 더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봄은 '새로운 힘이 생기거나 희망이 가득 찬 시절'을 뜻한다. 계절의 봄이 아니라 인생의 봄인 셈이다. 대부분 인생의 봄은 젊은 시절을 뜻한다. 하지만, 인생의 봄은 생각이 바뀌고 역동성을 유지한다면 그래서 새로운 것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50에도, 60에도 찾아올 수 있고 평생을 봄처럼 살 수도 있다. 생각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좋은 의미로 뜻이 맞고 편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지만 점점 새로운 것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해진다. '새로 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기성세대가 되고 꼰대가 되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믿고 상대의 말을 듣기보단 내 말만 하려고 한다. 역시 새로운 것을 듣고 볼 기회가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 인생의 새봄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꽃 피고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이란 계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여름의 열정이, 가을의 완숙한 단풍이, 쨍한 겨울의 추위가 좋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살랑이는 바람과 연초록색의 잎들이 하나 둘 세상으로 나오는 봄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인생의 봄도 마찬가지다. '나도 한 때는', '나도 소싯적에는'.. 모두 자기 인생의 봄날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무모에 가깝게 용감했고, 뒤는 생각하지 않고 사랑했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하지만, 봄이니 아름답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이런 시절의 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미 우리는 봄을 즐길 신체적 나이를 한참을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새봄은 오늘도 맞이할 수 있고, 내일도 맞이할 수 있다. 거기에 생각의 새봄을 계절의 새봄, 나이와 신체의 새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게 할 수 있다.
내 생각의 계절은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나이 따라 가을을 지나고 있을까?
겨울이 오기 전, 다시 새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도 세상을 '새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