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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자유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피와 살이 되는 조언과 잔소리 중간쯤에 위치한 말이다. 다들 많이 들었고, 많이 하고 산다. 해야 할 일을 미루면, 쌓이고 쌓이면 더 하기 싫다. 그렇게 쌓인 일은 작은 먼지가 구르고 굴러 태산처럼 커질 수 있다는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서 눈앞에 떡 하니 가져다 놓는다. 일을 미루는 것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종국에는 '능력 없는 사람'이란 달갑지 않은 이름표를 달게 된다. 성실하기만 해서는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없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폭삭 속았수다'의 아버지 관식이 보여준 성실함처럼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꾸준히 해내는 것은 삶의 미덕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아직은 여겨진다. 그러니, 게으른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결코 달갑지 않다.



일이 주어지면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다. 얼른 해야 한다는,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스스로 만든다. 적당한 불안감과 긴장은 동기부여가 되고 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제가 된다. 하지만, 일을 서두르게 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지나고 보면 천천히 생각을 더 하고, 필요한 정보를 더 모았더라면 분명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었을 일들이 많다. 머릿속에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일 전체를 빠르게 전행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일의 성격을 바꾸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직관은 혼자만의 생각인 경우도 많다. 특히, 감정이 개입된 일은 서두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감정적 요인이 기쁨이건 슬픔이건 혹은 화남이건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일이 생기는 데로 처리하려고 하면 과부하 걸린다. 과부하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실수하게 만들어 일을 망치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당장 하라고 타인에게 말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결정하고 강요하는 꼴이 된다. 내가 건네는 말이 호의에서 나온 조언이 될지, 아니면 쓸데없고 불편한 간섭이 될지는 말을 하는 내가 기준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준이다.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다는 것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계획을 수립한다는 의미가 된다. 계획을 세우면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충실하게 모을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직관에 의존한 한 두 번의 성공에 우쭐하기보다는 비슷한 사례를 조사하거나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얻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얼른 해야 한다'를 절대 명제로 만들고 그걸 따라가려고 하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그저 시간 순서에 따라 허접지겁 일에 덤벼들거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돈키호테처럼 무작정 덤비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그게 일이건 사람과의 관계이건, 우리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차분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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