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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논리

우리끼리, 이대로..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조직논리란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떻게 구조화되고 운영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는 조직의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 의사결정 과정, 역할 분담, 규칙 및 절차 등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처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고, 다양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조직논리란 때론 절대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설사, 그것이 사회규칙과 공동체 구성원의 대부분의 공유하는 도덕윤리와 위배될 때조차도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특히, 그 조직이 사회 구조에서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아름답게 미화되기도 하고 전설처럼 '우리끼리~', '지금처럼만~'을 외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나치에 부역하며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 일제 강점기 자발적 친일행적을 했던 사람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 조직의 힘에 순응했다고 말한다.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작가는 아이히만을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을 갖거나 광신적인 반유대인 혹은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을 주입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아이히만 본인이 망명시절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적은 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는 모두 무죄라면서 “우리는 모두 제국중앙보안청이라는 기계의 작은 톱니였고, 따라서 전쟁 중에는 전쟁이라는 살인 모터의 거대한 동력 전달 장치의 작은 톱니들”에 불과했다. “나 역시 일개 희생자”



즉, 수동적으로 상부의 명령을 집행한 것으로 봤다. 영화 암살자에서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염석진 왜 동지를 팔았느냐는 질문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답한다. 이 역시 자신은 그저 살기 위해 시대와 조직의 논리에 순응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강한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이너서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노력하는 이면에는 조직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라는 것을 갖기 위해서다. 그래서, 도덕과 법률, 양심보다 조직의 가치와 목표, 조직 논리가 우선시 되는 것이다. 비단, 영화 속 조직폭력배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소신과 다른 명령을 받았을 때 도덕적 양심 기준으로 판단하고 복종과 불복종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글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나는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중에 무엇이 되었을까? 내 생명과 재산을 버리고, 내 가족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 과연 언제일지도 모르는 숭고하다고는 하지만, 그 언제일지도 모르는 일에 매진했을까? 지금 이런 질문과 고민은 친일 행위자, 혹은 조직논리를 내세워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되는 결정을 하고 오랜 시간의 고통을 감내한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하고 박수를 보내기 위함이다.



누구에게 비난을 하고, 박수를 보내야 할지 구분이 힘든 시기다. 이성과 논리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라 혐오와 비방으로 점철된 극한 대립만이 남아 있는 듯한 세상에서 그저 조직이라는 거대한 조적에서 동력전달을 위한 작은 톱니에 불과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너의 의견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상대를 알기 위한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 '너와 나'라는 적대적 편가르를 위한 시험대다. 조직논리의 순응이 선택이 아닌 편가르에서 어느 쪽에서든 속해 살아남기 위한 전략게임의 일환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없고, 양립할 수 없는 너와 다른 나만 남은 세상이니.... 모두에게 조직논리에 닥치고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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