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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농공상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있다.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문벌과 반상의 등급을 혁파해 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할 수 있도록 과거제와 향교가 폐지되고 근대식 교육제도와 공무원 임용제도가 도입되어 신분 차별에 따른 특정 계층의 관직 독점을 깨트렸다. 거기에 더해 사농공상의 전통적 분업체제를 무너트려 양반 출신이라도 상공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도상, 제도가 적힌 문서상에는 그랬다. 그 이후로도 기존의 질서는 불문율로 유지되었고 직업의 귀천은 존재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말은 공허한 문구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평등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특수계급은 창설할 수도 없고 인정될 수도 없다.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은 용인되지 않는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말한다. 즉, 서로 간의 믿음으로 지켜지면 좋을 것들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규칙이다. 그렇다면, 계급과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이 없는 세상이라면 애초에 법 규정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분제가 존재하던 사회에서 신분제를 철폐하기 위한 과도기 단계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에 만들어진 헌법 규정에 신분과 계급이란 용어가 쓰였다는 것이 암시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동성동본이 아니더라도 성씨와 파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고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분제 폐지를 거치며 수많은 돌쇠와 마당쇠가 김, 이, 박 씨가 되었지만, 무슨 무슨 성씨는 천민출신이라는 불편한 말을 들어야 했다.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라든지 '명망가 집안의 후손'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한 보증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양반과 나머지로 구분되던 용어는 사라졌지만, 산업화를 거치며 자산가와 그 외로 구분되는 신분은 더욱 공고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사회 비판적 의미로 쓰였던 '흙수저 Vs 금수저'는 이제 전 국민이 다 알고 공감하는 용어가 되었고 언론에서조차 당연하게 쓰이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다르고, 태생이 다르다는 말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신분'의 대표적인 것이 직업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더운 날에는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운 날에 추운 데서 일하게 된다.'는 말은 노력하지 않는 이에게 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공부를 하고 재능을 키우는 데 '열정'을 쏟고 있는 10대들에게 사회적 신망과 연봉순으로 진로와 진학 상담을 하며 어른들의 라떼와 섞어 겁을 주기 위한 말로 쓰인다. 이 말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음이 내포되어 있다. 더운 날 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 추날 날에 더 추운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은 기피대상이라는 것,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일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삶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과 존경을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서열화된 계층과 계급화된 사회의 반영이다.



의대증원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도 결국은 안정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기 때문에 의대진학 열풍이 꺼질 줄 모르고 한껏 기세를 올리고 있다. 24시간 나오는 뉴스 채널과 종편에서는 '검사 출신~', '판사 출신~', '의사 집안 출신~'이란 말을 늘 상 듣는다. 그리고 그 출신은 빽이 되고, 빽은 INNER CIRCLE을 만들고 과실을 공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계급'을 나눠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직업에 의한 차별을 만들어 낸다.



직업이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아성찰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농공상의 귀천이 남아 있는 한 자아성찰에도 귀천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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