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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를 정하는 힘

남의 시간의 뒤를 사는 삶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대학원을 다니며 '잠깐만'이란 생각으로 발을 들여놓은 사교육 시장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나다'의 사전적 의미가 '공간적 범위나 경계 밖으로 빠져나오다', '어떤 힘이나 영향 밖으로 빠져나오다', '구속이나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다.'와 같이 주로 주어의 의지에 의한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말하고 있으니 뒤에 붙은 '못하다'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기도 하다. 자유의지로 발을 들여놓았으니 분명 내 발로 걸어 나갈 기회는 무수히 많았을 터이고, 되돌아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내 마음속에 아쉬움과 후회가 진하게 배어있나 보다.



스스로를 B급이 되고 싶었던 C급 강사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부지런히 살았고, 앞으로도 주어진 기회와 시간에 충실하게, 부지런히 살 계획이다. 그것이 '돈을 지불한 사람 '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선생님이란 손발 오그라드는 호칭보다는 강사가 편하고, '청부업자'라는 스스로 정한 거창한 직업관 혹은 직업윤리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치워버리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은 것은 '시간'이다. 학원 강사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의 시간 뒤를 사는 사람들'이다. 학교가 끝난 시간에, 일정이 비는 시간에 의뢰받은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란 뜻이다. 특 A 일타강사는 인강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사람도 다른 사람의 뒷 시간을 채워갔고, 노력과 노력, 다시 노력을 더해 지금의 자리에 간 사람을 뿐이다.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를 '시간=돈'이란 말로 표현한다. 회사와 월급이라는 것도 결국은 돈으로 누군가의 노동이 가능한 시간을 사서 이윤을 창출하는 활동에 투입해 더 큰 이익을 얻는 구조 속에서 나온다. 혼자서는 24시간을 일할 수 없지만,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일을 240시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시간이라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미래의 일정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다른 이들은 그 사람이 정한 시간표에 맞춰서 자신의 시간과 동선을 정하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 부러운 힘이고, 절대적인 힘이다.



방과 후 시간, 주말 시간. 그렇게 누군가가 정해 놓은 뒷 시간을 채우며 살다 보면 그 시간을 사는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퇴근 후 저녁밥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마시자는 약속을 잡을 시간에 생업을 위한 나의 시간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주말에 낚시를 가고, 등산을 가고 혹은 글램핑장에서 여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부러운 것이다. 나름의 시간을 알차게 살아왔지만,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한 해 두 해 갈수록 진해지는 것은....



그렇게, 시간은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의미하고 더 강하게는 타인의 삶에 대한 결정권까지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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