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ake it personally
내가 꽤 애정을 갖고 가르치던 수업이 있다. 지금도 내가 가르쳤던 수업 중에서는 가장 학생들과의 합이 좋았던 수업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강의를 한 지 3년 차였지만, 수업시간에 우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어쩌지?’
조별활동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의 이목이 그 학생에게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후다닥 그 학생에 가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 학생이 내용이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짜증을 내며 눈물을 계속 흘렸다. 평소에도 그 학생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학급 전체로 봤을 때 그 정도의 어려움은 다들 겪고 있었고 (어려움을 겪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그 학생의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아냐, 너 잘하고 있어. 이 내용을 처음 배우고 있는 데 어려운 건 당연해. 연습을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고 나아질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계속 내게 거부의 표시를 보내면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내가 정말 잘 가르치고 싶었던 수업이었기도 하지만, 학생의 눈물과 비난을 직접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강의평가에 안 좋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보통 한두 명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겠다’와 같은 언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 지. 만, 이렇게 수업에 우는 학생이라니?
그 학생의 눈물이 힘들었다. 나를 비난하는 거 같아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나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지금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그렇게 힘들 일이었나 싶지만 그땐 참 힘들었다.) 지도교수님 오피스에 미팅하러 가서도 시무룩하게 걱정 근심 가득하게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교수님한테, 수업시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의 코디네이터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이런저런 위로와 함께 ‘너 이렇게 학생들 말 하나하나에 힘들어해서 어떻게 할래’라고 걱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Don’t take it personally.
나는 “애가 울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라는 반응을 했다.
She could have something else going on in her life. And even if it really was because of the course content, that isn’t about YOU. It’s about your work at the moment.
그 친구가 삶에 다른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 그리고 만약 그게 정말 너의 수업 때문이라고 해도, 그건 "너"때문이 아니야. 그저 너의 그 순간의 일에 관한 것일 뿐이야.
교수님이 덧붙여 말을 해주셨지만, 와닿지 않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게, 그 학생의 눈물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 강사로서의 능력에 대한 비난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 마음이 무겁게 다음번 수업에 들어갔는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그 학생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수업을 하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날은 그 학생에게 수업 끝나고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끝나고 학생에게 수업이 많이 어렵냐고 물었다.
우물쭈물하던 그 학생이 다시 눈물을 보였고, 나는 또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 학생이 이야기를 꺼냈다.
“…. 사실 화학 수업에서 다른 TA가 한 말 때문에 그래.”
“왜? 그 TA가 뭐라고 했는데?”
“나는 나쁜 동네에서 와서, 좋은 고등학교에서 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거래. 아무리 해도 잘할 수 없대. 한계가 있대.”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쯤은 떴던 것 같다. 어떻게 학생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아주아주아——주 양보해서 혹시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어떻게 그걸 학생한테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차별로 신고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땐 그런 걸 잘 몰랐다.) 그건 그 TA가 아주 잘못한 말이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해주면서, 그 친구가 내 수업에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덧붙여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숙제에 대한 질문도 언제든 하라고 하며 달래서 학생을 보냈다.
그리고 그 학생을 보내고 나서, 상황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친구는 내 수업에 와서 눈물이 터졌지만 가장 큰 속상함은 내 수업 때문이 아니었다. 수학 수업에서도 본인이 힘들어하니 그 나쁜 TA가 한 말이 사실일까 봐, 이게 정말 본인의 한계일까 봐 무서워서 눈물이 난 것이었다. 그 속상함과 두려움은 우리 수업 밖에서 시작됐다.
결국 교수님 말이 맞았다. 그 학생의 눈물이 온전히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며칠을 마음을 무겁게 지냈다. 그 아이의 눈물을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던 거다. 학생들이 하는 부정적인 말은, 이 학생처럼 다른 곳에서 온 스트레스를 내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혹은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교수님의 말처럼, 정말 내가 수업에서 조금 실수를 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학생들이 싫은 소리를 했더라도, 그건 ‘나’에 관한 평가가 아니라, ‘나의 그 순간의 행동’에 관한 평가다. 이 학생이 정말 수업에서 너무 힘들어서 울었더라도, 그게 내가 강사로서의 자질이 없다거나 수학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학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보면 나 혼자 멀리 간 거다.) 그저, 그날의 내 수업이 부족했던 것이고 더 발전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이야기, 그뿐 일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로부터 오는 안 좋은 피드백 말고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계에 있으면서 그냥 인생을 살다 보면 내게 던져지는 부정적인 감정들 혹은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를 듣게 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조언이라는 포장으로 내게 아픈 말을 던지기도 하고, 가끔은 리뷰라는 포장지 안에 오랜 시간 공을 쏟은 내 논문에 대한 아픈 평가들이 날아오기도 한다.
그때도 이 조언은 유용하다. 이 말은 결국 남이 하는 말과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내가 바라보는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정적 반응도 그 사람의 상황을 내가 모르니 어디서 기인해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반응은 하되, 나의 감정으로 나에 대한 평가로 너무 깊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 논문에 대한 평가도, 그 특정한 기간 과거의 내가 한 일에 대한 평가이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연구자인지에 관한 평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내가 그 사람의 평가를 보고 수정하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면, 나의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의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평가를 보고 무너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아직도 나는 ‘나’와 ‘나의 역할’에 대한 평가 분리가 쉽지 않다. 내가 한 일들의 결과를 받아 들 때면, ‘내’가 평가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아냐, 이건 내가 한 일에 관한 평가지, 나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둘을 분리하려고 한다.
서로 조금 더 날 서지 않고 따뜻하면 둥글둥글하면 좋으련만, 다들 인간들이라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그게 쉽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가끔 날카롭게 날아오는 조각들이 나를 무너트리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