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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Nov 15. 2024

직선 경로를 이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직선만 답은 아니다

내가 지도교수님과의 일화를 올리면 많은 분들이 정말 좋은 지도교수님이라고 할 만큼, 좋은 분과 함께 박사과정을 했다. 그래서 내가 박사과정 때 겪었던 어려움은 다소 누구에게나 일어날법한 소소한 일들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정말 힘들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으며 박사과정을 하는 분들이 많다.


박사과정 전에도 내 삶은 비교적 평탄했다. 학부 진학을 할 때 재수를 하고, 학부 졸업을 하고 미국 유학 가기 전까지 1년 정도 준비기간이 있긴 했지만 큰 어려움이 있진 않았다.


그렇게 무난 무난하게 박사과정을 지났고, 박사과정 마지막 해 가을에 시작한 잡마켓에서도 꽤 많은 교수자리의 1차 인터뷰도 받아보고 12월 크리스마스 전에 포닥 오퍼를 받고 수락하면서 잡마켓도 빨리 탈출했다.


내 인생이 그냥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2023년에 총기사고와 교통사고 등의 일이 있었고, 내가 포닥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일들도 내게 트라우마를 남겨준 데다가, 박사 과정 그 자체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타지생활에서 소모되었던 나의 감정들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포닥을 이제 막 시작한 입장에서 그만두는 게 꼭 내 커리어를 다 포기하는 것 같았다. 바로 교수자리로 간 동기도 있고, 포닥을 하면서 논문을 내고 그랜트를 따는 친구도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1년을 쉬면 나만 더 뒤처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상처들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더 나를 푸쉬하다간 나를 잃겠다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무렵 내가 걱정 돼 자주 통화를 하던 친구도 부모님도 평소의 내게 받는 느낌과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어쩌면 사고 이전에 총기사건이 있던 날, 다섯 시간 동안 캄캄한 방에 혼자 숨어있었던 그때  더 충분히 잘 쉬고 내 감정들을 돌보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다음 직장이 정해져 있고, 디펜스 날짜도 정해져 있었기에 나는 무조건 졸업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 날짜를 맞추기 위해 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무사히 디펜스도 하고 졸업도 했다.


지친 마음으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폐차와 뺑소니까지 겪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사고가 나고 며칠 동안은 그냥 계속 잤다고 하니 주변에 간호사를 하는 친구들이 아마 아주 경미한 뇌진탕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했고, 몸은 멍투성이였다.


회복이 더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또다시 나를 무리해서 끌고 나가 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는 게 계속 두려웠다. 내가 가던 경로를 이탈하는 기분에 속상한 날들이었다. 나의 기대도 사람들의 기대도 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쉽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가까운 분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네가 계속 포닥을 하고, 또 교수로 가고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스무스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 일들과 이 경험으로 인해서 너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


그 얘기를 들으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수학선생님들 중에 서울대 수학과 박사학위가 있으신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이 친구들이 설명을 잘 이해 못 할 때마다 ‘이걸 왜 이해 못 하지’하고 갸우뚱하시는 경우를 종종 봤다. 그분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고 쉬운 것들이라 이해를 못 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어쩌면 내가 이런 일들이 없이 운이 좋게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지금보다 더 좁지 않았을까? 이 상황이 내가 조금 더 성숙하고 겸손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점의 전환이 되었다. 그리고 쉬기로 결정하기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가 조금 줄었다.




내가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결정을 응원해 주신 교수님들이 많다. 그중에 한 분은 학회 플레너리 톡을 할 정도로 명성이 있으신 분인데, 본인도 결혼과 육아를 겪으면서 커리어에 공백이 생겼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보라며,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셨다.


그분이 본인의 상황을 토대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셨듯, 나도 이번 경험이 언젠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직선 경로를 이탈할 때,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말들을 얹는다. 누군가는 이탈하지 말고 조금 더 해보라고, 누군가는 잠깐 쉬었다가 돌아서 가도 괜찮다고. 모두 나를 걱정해 주고 아끼는 마음에 해주시는 것이니 감사하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모른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걸 알 수 있는 사람도 나다. 본인이 쉬어야겠다고 혹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한계를 느낀다면 그건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사인일지도 모른다.


그 판단과 결정은 개인의 몫이지만, 나는 최단 경로를 이탈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다. 나는 이번에 쉬면서 더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누군가 너무 힘들다며 쉬어가고 싶다고 할 때 안된다며 재촉하기보다는 그 마음을 이해해 주고, 곁에서 그 사람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걸로도 나는 이번에 큰 교훈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앞으로 잘 풀려서 쉬어도 괜찮다는 걸 직접 보여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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