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 커피를 내리는 아침 루틴

- 의식처럼 반복되는 손길이, 나를 하루에 데우는 방식

by SH

바닥은 아직 차갑다.

창문을 닫아 두었지만, 밤의 흔적이 천천히 바닥을 타고 흐른다.

발끝에 닿는 냉기는 말이 없고,

시간은 그 조용함을 조심스레 넘는다.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아직 조명을 켜지 않은 어두운 공간,

그곳은 나만이 아는 의식의 장소다.

물주전자를 들어 가열판 위에 올린다.

찰칵.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지난다.

물은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곧, 끓기 시작할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원두통을 연다.

어제와 같은 콜롬비아산, 같은 분쇄도.

그러나 향은 다르다.

원두는 늘 날씨와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향을 내놓는다.

손으로 그라인더 뚜껑을 여는 소리,

스푼으로 원두를 덜어 담는 감각,

그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르지 않지만,

오늘은 어딘가 다르다.

삶은 늘 비슷한 동작 속에서 다른 결을 드러낸다.

나는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드리퍼를 올리고, 종이 필터를 펼친다.

필터의 접힌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러 펴는 이 순간조차도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느리게, 조용히, 반복한다.

물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미세한 진동 같다가,

곧 작게, 부풀듯 부글거린다.

그 소리는 어떤 종류의 마음도 다루지 않고

그저 물을 데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정리된다.

물을 붓는다.

처음 몇 방울은 마치 인사처럼 조심스럽다.

그리고 원두가 불어난다.

검은 분말 위로 진하게 퍼지는 갈색의 둥근 숨결.

거품이 일고, 향이 올라온다.

부엌의 공기가 변한다.

어두웠던 공간이 향으로 채워진다.

나는 이 장면이 좋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모든 게 말이 되는 순간.

물이 흐르고, 향이 오르고, 손이 그 흐름을 따라간다.

몇 차례 물을 붓고 멈춘다.

그 사이마다 깊은 숨을 쉰다.

커피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면서,

나도 조금씩 내려진다.

컵에 닿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잔을 들어, 향을 맡는다.

입에 닿기도 전에

이미 나의 일부가 된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커피를 내렸을 뿐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 안에서

내 안의 어떤 결이 다시 맞춰졌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왜 매일 이 같은 루틴을 고집하는지.

혹은 이 행위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조용한 반복이

하루를 어떻게 여는지를.

손으로 커피잔을 감싸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들을

한 번쯤 떠올렸다가,

그냥 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공간.

그게 바로 이 아침의 커피다.

밖은 여전히 흐리다.

하루는 아직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벌써,

조금씩 깨어난다.

따뜻한 커피가 식어갈 때쯤

비로소, 오늘이라는 문을 연다.


당신에게 ‘하루를 여는 의식’은 어떤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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