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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보이 Feb 01. 2018

[슈프림] 슈프림의 미래는 슈프림이 아니다

브랜드 슈프림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프린트된 '포토티'. 마이크 타이슨을 상대로 한달여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성사되었다.
컬라보 제품이 발매 될때마다 슈프림 매장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 사진은뉴욕양키스와의 컬라보 제품 판매 현장.
SUPREME X NEW YORK YANKEES
도쿄 시부야 매장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슈프림 직원의 제지를 받았고, 이후 그 직원은 감시의 레이저를 쏘아댔다.


흘러간 권투선수에게 모델이 되어주십사 매달렸다. 과정은 지난했고, 태도는 집요했다. 한달 여간의 설득 끝에 받아낸 수락, 마이크 타이슨의 얼굴이 슈프림의 티셔츠 위에 프린트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조합, 그러나 절로 납득이 되는 조합. 케이트 모스에서부터 레이디 가가, 리한나,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록 뮤지션 루리드까지, 모두 슈프림식 집요함을 경험했다. 슈프림의 ‘포토 티’ 시리즈에 값비싼 얼굴을 내주었다. 슈프림 신도들은 이번에도 매장 앞에서 기나긴 줄을 섰다.

   
집요함의 화신
슈프림은 ‘스트리트 패션계의 샤넬’이라 불린다. GQ는 '현존하는 지상 최고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라 칭했다. 제임스 제비아라는 사내가 1994년 뉴욕에 차린 스케이트보드 샵이 시작이다. 매장 안에는 스케이트볼이 설치되었다. 보더들에게 천국 문이 열렸다. 성지가 되었다. 그런데 천국에서 뛰어 노는 이들의 행색이 볼품없었다. 제임스는 아비의 심정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두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때부터 슈프림은 종교가 되었다.
   
거대한 기대가 늘 슈프림을 향해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까. 어떻게 놀래킬까. 매번 자력으로 이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마법의 열쇠를 발견했다. 컬라보레이션이었다. 컬라보는 충돌이다. 이질적인 두 브랜드가 부딪혀 세상에 없던 결과물이 탄생한다. 브랜드간의 특급 레버리지다. 슈프림식 컬라보는 영역을 넘나든다. 나이키, 꼼데가르숑 같은 동종업계 브랜드에서부터 뉴욕양키스, 디즈니, 리버티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의외성은 물론 명분까지 담보한 조합이다. 빨강 로고를 내어줄 영광의 주인공은 까다롭게 선별한다. 결정이 내려지면 집요하고, 주도 면밀하게 달려든다. 콜라보 할 아티스트들을 섭외하기 위해서는 아트 큐레이터까지 채용했다.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리처드 프린스가 슈프림의 스케이트보드에 재능을 입혔다. 콜랙터들이 침을 흘리는 현대미술 작품이 탄생했다.
   
슈프림식 집요함은 ‘희소성’에서 절정을 이룬다. 슈프림의 매장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4개국에 11개에 불과하다. 생산하는 제품은 쥐꼬리만하다. 사고 싶은 열망은 도처에 가득한데 구할 길이 없다. 수요 곡선이 공급 곡선의 꼭대기에서 만난다. 콜라보라도 할라치면 매장 앞에는 기나긴 행렬이 들어선다. 한 사람이 하나의 아이템만 구입할 수 있다는 룰에 모두가 기꺼이 순종한다. 슈프림 직원의 싸가지를 감내한다. 매진된 재킷이 몇 분 안에 이베이에서 세배 이상 뛰어서 올라온다. ‘슈프림 테크족’의 소행이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브랜드 포화’의 시대에 발생한다. 브랜드와 소비자 관계의 역전이다.

지난 몇 년 간의 트랜드마저 슈프림의 편이었다. 현재의 패션계는 ‘복고’와 ‘스트리트’ 두 단어로 요약된다.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퉈 스트리트 컬처에 몸을 기댄다. 루이비통 같은 고고한 귀부인마저 거리의 청년 슈프림에게 손을 내미는 판이다. 슈프림의 몸값은 올라간다. 정작 당사자는 초연했다. ‘이 상태로 충분히 좋사오니’의 스탠스. 복권에 당첨된 벼락부자의 모습은 없었다. 스스로의 욕망에 대한 가지치기이자, 자족할 줄 아는 자의 내공이었다.

변심
그런 줄 알았다. 2017년,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사실 여부를 재차 확인하게 만드는 뉴스가 들렸다. 글로벌 투자 그룹 칼라일이 슈프림의 지분 50%를 사들였다. 평가된 브랜드의 가치는 10억 달러. 거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부잣집에 입양되었다. '작은' 슈프림에게 투자 따위는 필요 없다던 제임스 제비아는 슈프림이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운 브랜드가 아니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변심으로 들렸다. 아비가 굴복했다.
   
슈프림의 미래는 슈프림이 아니다
슈프림이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상당수이다. 덩치가 커진다고 브랜드 가치가 추락한다는 논리 또한 거칠다. 그러나 슈프림을 향한 우려는 합당해보인다. 새로운 안주인 칼라일은 투자 대비 수익율을 계산할 것이다. 슈프림은 몸값을 해야 한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 할 것이다. 세계 도처에 슈프림 매장이 생길 것이고,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슈프림을 입고 돌아다닐 것이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슈프림이 과연 슈프림이란 말인가.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적혀있다. 슈프림을 향한 바램이 이런 것이었나. 너 이렇게 만만한 친구였니. 희소성은 증발된다. 믿음은 깨진다. 팬 쉽은 느슨해진다. 신도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슈프림의 세계는 집요함으로 세워졌다. 브랜드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해내는데 집요했고, 원치 않는 것을 거절하는데 집요했다.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가 가질 수는 없는 ‘완벽한’ 브랜드가 만들어졌다. 안타깝게도, 이 십 년간 쌓아온 공든탑이 허물어지는 건 한 순간이다. 자본을 얻었다. 영혼을 잃었다. 배신당한 자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슈프림식 집요함의 상실이다. 슈프림다움의 종언이다. 슈프림의 미래는 슈프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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