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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oomoon Dec 04. 2024

5장 아빠는 이런 걸 좋아했어

 아내와의 티타임 이후로, 집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내지만, 아내와 나는 작은 대화와 눈길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슬쩍 다가왔다.

 “아빠, 아빠는 뭐 좋아해?”
 질문은 단순했지만,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갑자기 묻는 이유가 뭐야?”
 “그냥…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에 대해 글 써오라고 하셨거든. 아빠가 뭐 좋아했는지 생각이 잘 안 나서.”

 딸아이의 말에 심장이 순간 찔린 듯 아팠다. 아빠가 뭘 좋아했는지 떠올리지 못할 만큼, 나는 아이들에게 나를 잘 보여주지 못했던 걸까?

 그날 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뭘 좋아했지?’

 다음 날, 딸아이와 함께 저녁 설거지를 마친 후였다. 나는 거실에 있던 오래된 앨범을 꺼내 들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아빠가 뭘 좋아했는지 알려줄까?”

 앨범을 펼치니 어릴 적 사진들이 쏟아졌다.
 “여기 봐, 이거 아빠가 대학생 때 등산 갔던 사진이야.”
 “아빠, 이 머리는 뭐야? 완전 촌스러워!” 아들은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땐 그게 멋이었어!” 내가 너스레를 떨자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낸 나의 취향과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냈다.
 “아빠는 등산을 참 좋아했어. 산에 올라가서 바람을 맞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더라고.”
 “그리고 여기 봐, 이건 아빠가 낚시 갔을 때. 이만한 물고기를 잡았었지!”
 딸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진짜야? 아빠가 낚시도 좋아했어?”
 “그럼! 그런데 요즘은 바빠서 한 번도 못 갔지. 언젠가 우리 다 같이 가보자.”

 앨범 속에서 음악 축제에서 기타를 들고 있는 내 사진도 발견했다.
 “아빠 기타도 쳤어?” 아들은 놀라며 물었다.
 “그럼, 아빠가 대학 때 밴드 동아리였거든. 음악도 정말 좋아했지. 지금은 손이 굳어서 못 치겠지만.”

 아이들은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듣고는 흥미로워했다.
 “근데 아빠, 지금은 뭘 좋아해?” 딸아이가 다시 물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음을 깨달았다.
 “음... 지금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걸 함께하는 게 제일 좋지.”

 아이들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 마음은 묵직했다. 내가 좋아했던 많은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사라져버린 듯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주말에 애들 데리고 산에 갈까?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등산 한번 가보고 싶어.”
아내는 놀라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아이들도 좋아할 거야.”

 그 주말, 우리는 작은 산으로 향했다. 정상에 오른 아이들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빠, 여기서 바람 맞으니까 아빠 말대로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나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그래, 이게 아빠가 좋아했던 기분이야.”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예전의 나를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금씩 더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런 걸 좋아했어.”라는 말이, 언젠가 아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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