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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oomoon Dec 09. 2024

6장 가끔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침부터 정신없이 하루가 시작되곤 한다.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 메일함에 쌓인 메시지, 그리고 가족들과 나눠야 할 일상의 대화들까지.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소홀히 하고 있는 건 아이와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며칠 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던 나에게 딸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아빠, 왜 하늘은 파래?"
 피곤했던 나는 짧게 대답했다. "햇빛 때문에 그래."
 "햇빛이 왜 파랗게 보이게 해?"
 그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아빠와 얘기를 하고 싶다는 신호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 깊게 대화를 나눈 지 얼마나 됐을까? 내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단답형에 그쳤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날은 일부러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아이와 함께 근처 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아이는 손가락으로 흙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 여기 흙이 왜 까매?"
 "흙 속에는 식물이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영양분이 많아서 그래."
 "그럼 흙이 없으면 식물은 못 자라?"
 "그럴 수도 있지. 대신 요즘은 흙이 없어도 식물이 자라는 방법을 사람들이 찾아냈어."
 "우와! 그럼 우리도 그거 해볼 수 있어?"


 딸아이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은 단순히 '당연한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스케치북을 꺼냈다. 딸아이가 공원에서 본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 그림에 이야기를 붙였다. "이건 공원에 사는 작은 개구리인데, 얘는 매일 하늘이 왜 파란지 궁금했대."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한 권의 작은 그림책을 완성했다. 제목은 '파란 하늘 개구리의 비밀'.


 딸아이와 책을 만들며 깨달았다. 나에게는 하루의 끝을 정리하는 사소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이 '아빠와 보낸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른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는 나에게, 세상을 다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놀라운 선생님이였다.


 그날 이후, 아이의 질문에 더 귀 기울이기로 했다. 


 "아빠, 우리는 또 책 만들 수 있어요?"
 "그럼. 다음엔 아빠랑 같이 더 멋진 이야기 만들어 보자."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며 느꼈다.  내 하루가 아무리 바빠도, 아이의 눈높이를 잊지 않는 아빠가 되겠다고. 아이는 그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세상을 다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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