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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oomoon Dec 03. 2024

4장 아내와의 티타임, 언제였더라?

 결혼 전엔 아내와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대학 앞 카페에서, 동네 공원 벤치에서, 혹은 늦은 밤 집 앞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의 꿈과 고민, 아내와의 하루와 속마음은 티 한 잔만으로도 끝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혼 후엔 어쩐지 그런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고, 거실엔 아내가 혼자 앉아 있었다. 주방에서는 조용히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둘만의 시간을 가진 게 언제였더라?'


"우리, 차 한잔할래?"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내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괜찮겠네."


 우린 주방에서 좋아하는 차를 꺼내 들었다. 아내는 허브차를, 나는 녹차를.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눈을 잠시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어색했다. 결혼 11년 차에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웃겨?" 아내가 물었다.

  "아니, 그냥... 우리도 한때는 서로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참 어려운 일 같아서."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를 잘 못 본 것 같아."


 차를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이미 어두워진 하늘 아래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기억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내가 물었다.

아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지. 너 그때 너무 어색해서 나한테 녹차가 허브차보다 낫다고 강의하던 거."

  "그랬나?" 난 머쓱하게 웃었다.

  "그랬지.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았어. 너랑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으니까."


 우리는 오래전 이야기를 나눴다. 첫 데이트, 결혼 준비의 고단함,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의 벅참까지.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재로 돌아왔다.


 "앞으로 우리, 이렇게 가끔 티타임 가져볼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좋지. 그런데 다음엔 내가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겠어. 이거 너무 쓰다."

 아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녹차가 좋다고 강의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마음은 오랜만에 가벼워졌다. 티타임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날들 속에서 서로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다시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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