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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07. 2024

100명 중 그 한 명이 나일 줄이야.

스물한 걸음

"무난하게 살라고. 꼭 나대는 애들이 있어!"

"튀지 않도록 해. 너무 못하지도 말고. 적당히."


사회초년생 시절 선배들에게 들었던 조언. 튀게 살고 주목받는 삶을 사는 건 직장인에게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했다. 쥐 죽은 듯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딱 봐도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 관행처럼 지속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더 좋아질 게 눈에 보이는데.


'패왕색 패기를 한 번 보여주자.'


마음속으로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후우 후우. 시뮬레이션을 하면 할수록 안정은커녕 점점 떨려오기 시작한다. 참 이상한 게 연습과 실전은 많이 다르다는 거다.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분명 실전에서 큰 효과가 생겨야 하는데 불안감이 더 커진달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쳐 봐야 마음이 추슬러질 거 같다. 성큼성큼 걸어서 선배 앞에 가서 당당히 얘기는 못하겠고.. 소심하게 회사 채널 메시지를 보낸다.


[저.. 선배 님.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파티션 너머로 바로 보이는 선배에게 굳이 채팅을 보냈다. 선배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일어서서 고갯짓을 보낸다.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 마치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쭈뼛 거리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옥상으로 이동 중. 우리는 약속한 듯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도 뭔가 불편한 얘기가 오고 갈 것임을 직감한 것일까?


옥상 문을 열고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나자 그는 기선 제압을 하듯 기지개를 켜며 크게 소리를 냈다.


"으라차차차차차차! 아오 날씨 좋다!!!!!!!! 뭔데?"


방심하는 사이 훅 들어오는 질문.


"어.. 저 그게.. 오늘 저한테 시키셨던 일 때문인데요."

"그게 뭐?"

"제 생각에는.."


바보 같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머릿속은 이미 하얘진 상태. 그래도 떨리는 손을 뒷짐 지고 시선은 선배의 눈과 목 사이 어딘가를 향한 채 주절주절 할 말을 꺼냈다. 중간중간 선배의 불편한 듯한 헛기침 소리 그리고 가래 뱉는 소리가 들린다.


"말 다했어?"

"어? 네네.."

"후우.. 내가 너를 어쩌면 좋겠냐.."


뒷짐 진 채 마치 난 벌을 받는 자세로 땅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뭐. 바꾸자고? 나도 알지. 근데 그렇게 못해."

"왜요?"

"관행이니까! 넌 너만 의식 있고 똑똑한 줄 알지? 우리가 다 병X 같아 보이고? 그치?"

"아니.. 그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까 보니까 눈 부릅뜨고 정의의 사자인 마냥 얘기 꺼내던데. 니 눈엔 내가 아주 꼰대 같이 보이겠다. 그런데 어쩌겠냐. 하라면 해야 해. 그게 사회생활이야."


말없이 선배는 담배를 한참 동안 피우기 시작했다.


"절대로 바꿀 수 없을까요?"

"하.. 나.. 진짜. 너 같은 애를 내가 100명 넘게 만났어. 그렇다고 네가 그중 특별한 한 명이 되는 건 아니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뭐 별 수 있어? 자신 없으면 떠나."

"네에.."


그래서 떠났다. 사표의사를 내비치자 선배는 눈이 똥그래졌다.


"야이씨! 진짜 그만둔다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국룰..(실제로 이렇게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야!! 네가 하던 일은 어떻게 할 건데? 인수인계 기간 몰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저.. 개념 없는 놈.. 아오 그래 가라 가!"


짐을 싸서 나온 회사를 바라보니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다. 하지만 난 개념도 말아먹고 인성도 말아먹은 패배자가 되어 있었다. 순간 밀려오는 자괴감.


[평범하게 사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그렇게 꼭 나대야 했어?]

[미안미안..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다음엔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할게.]

[퍽이나.]


하아. 앞으로 또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겠지. 그리고 지금처럼 도망치는 건 좀 비겁하긴 했어. 어떻게든 해볼 생각을 해보고 결정했어도 되는 거였잖아.


100명 중에서 튀는 1명처럼 살아가는 방식은 사서 고생길을 만든다. 뭐가 그렇게 매번 뾰족해지는 건지. 언젠가는 덜 뾰족해질 수 있는 날도 오겠지? 그러다 문득 뾰족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태어난 고슴도치 생각이 났다.


고슴도치가 고슴도치가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고슴도치인 걸 인정하고 고슴도치로 살아가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상 일이라는 게 꼭 정해진 틀에 맞춰야만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도 결국에는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틀은 아닐까?


그렇게 40대 고슴도치 남은 오늘도 글을 쓰며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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