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걸음
[애플이 시총 1위를 탈환했습니다!]
[MS의 가치가- 엔비디아-]
[코인의 상승세가 심상치-]
[서울 집값 분위기가 심상-]
이 나이쯤 되어 보니 경제 기사에 관심이 저절로 가진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제에 재미를 느꼈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엄~청 재미없게 느껴졌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들렸던 것도 같은데.. 시험만 아니었다면 굳이 공부할 일도 없었을 거 같다.
그렇게 영원히 관심 없을 거 같았던 경제 이야기에 언제부터 관심이 생긴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결혼이라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때쯤인 거 같다.
"오빠! 우리 결혼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있어?"
"어..? 으음.. 마이너스는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마이너스가 아니어야지. 월세로 시작하는 건 좀 그런데."
'큰일이군.. 근데 요즘 아파트 전세가격이 얼마 정도지?'
아파트라고는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눈은 높아 당연히 아파트 전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제부터 모아야지 ^^"
"하아.. 그동안 돈은 딴 여자한테 잔뜩 써놓고 나한테는 아끼겠다고?"
"아니야. 난 oo 외에 여자를 만나본적이 없는데?"
"... 죽을래?"
"열심히 모으겠습니다!"
경제관념 0에 수렴하던 난 그때부터 반강제적인 저축을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저축을 하긴 했는데.. 부끄럽게도 자유예금 형태로만 해서 금액자체가 늘 들쑥날쑥했다. 항상 쓸 거 다 쓰고 나면 당연히 저축 금액은 0 ~ 몇십만 원 수준이었으니 할 말이 없네.
지금의 아내와 미래 계획을 세우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당당하게 선언했다.
"저.. 결혼 전까지 좀 빌붙겠습니다. 생활비 못 보태드려 죄송합니다."
"늘 그랬으면서 새삼스럽게 뭔 소리니?"
"아..?"
좀 더 공식적으로 생활비를 보태지 않고 본격적으로 빈대가 되었다. 선언을 하고 나니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불효 생활 스타트.
돈 모으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항상 쓰기 바빴던 사람이 허리띠 졸라매고 저축을 하려면 기존 습관을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 일단 그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여자친구 덕에 강제로 해야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여자친구 말을 안 들었으면 내 삶은 빛이 나는 솔로였을 거 같다.
"빚 아니고요?"
"..."
일단 미친 듯이 모았다. 사실 돈을 모아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계기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여하튼 나도 생애 처음으로 최선을 다해 저축이란 걸 해본 셈이다.
그렇게 그렇게 결혼도 당하게 되고.. 작지만 집도 마련하고 경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공부랑 투자도 해보게 되었다.
"와.. 해보니까 뭐 할만한데?"
원래 거지 같던 기억도 지나고 나면 보정이 되는 법이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아름답게 미화가 되어 있었다.
대신 얻은 게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꿈!
"엥? 뭔 꿈 타령이요? 정신 못 차렸네.."
맞다.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꿈을 좇아 살 수 없는 세상인데 감히 내가 뭐라고 꿈얘기를 한단 말인가.
돈에 관심이 생기며 그 좋아하던 독서도 어느 순간 놓기 시작하고 전공서적만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독서라면 독서겠지만 전공서적은 영혼을 살찌우는 느낌이 안 들었다.
영혼도 너무 살찌면 위험하니 적당한 다이어트는 필요하겠지만 당시 돈만 좇던 내 영혼은 기아 상태에 가까웠다.
"차암~ 배부른 소리를 정성스럽게도 쓰네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렇지만 먹고살만해질수록 내 안의 똬리를 틀고 있던 흑염룡이 자꾸 나오려고 하는 걸 무시하고 싶지도 않았다.
길어질 거 같으니 다음으로 넘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