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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09. 2024

표류 노인은 되기 싫어.

41 걸음

며칠 전에 들은 [하류 노인]이라는 말.


'하류 노인이 뭐야?'


일본에서 시작된 말로 은퇴 후 급속도로 경제적인 타격을 받아 하층민으로 전락해 버리는 노년을 뜻한다.


'은퇴 후 삶.'


회사에 속해 있을 때도 간간히 떠올렸지만 '먼 미래니까 나중에~'라며 애써 기억의 다락방 속 어딘가에 쑤셔 박아 놓기 바빴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만큼이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문득 반지하 빌라에 살던 시절 매일 힘겹게 폐지를 줍던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중엔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지더니 서로 자신의 영역이라며 싸움도 생겼다.


버는 금액을 알지는 못하지만,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웃음 짓던 옆집 할아버지는 매일 벌은 몇 천 원으로 소주를 사 드셨다. 그리고 술은 그를 다른 존재로 바꿨다.


매일의 힘든 일과 때문일까. 소주를 마신 후 그는 고성방가 속에 신세한탄을 하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동네 분위기는 침울했다. 어둠을 깨며 고상방가를 지르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도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생각해 보면 참 무섭다. 상류의 삶은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삶은 꿈꿔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은퇴 후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하류로 전락해 버린 삶은 어떨까?


'돈.. 여유로운 돈만 있다면.'


상상해 봤다.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한 돈이 있는 상태에서 혼자 살게 된다면 내 노후는 어떨까?




여느 날처럼 매일 들르던 카페를 갔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 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적적하고 가까운 거리라도 걸으면 운동이 되겠지.


"에구구.."


부쩍 아파진 무릎 관절과 허리를 곧추 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오자 바삐 움직이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 속에 있을 때가 있었지.. 그때가 그립네.'


회사 다닐 때 그토록 바라던 여유의 시간이 풍족하게 주어졌는데.. 오히려 바빴던 시절이 그립다니. 인생 참 모르겠네.


익숙하게 거리를 지나 늘 다니던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갔다. 오늘은 아침 세트 메뉴를 먹어야지. 키오스크를 터치해 주문을 마쳤다.


"어이~ 김 노인 왔는가? 오늘도 커피 마시게?"

"허허. 그렇지 뭐어. 별다를 게 있나."

"잠시 앉아봐. 글쎄 양 할머니 알지?"

"음. 곱게 차려입고 나오던 할머니?"

"응. 글쎄 요즘 통 안 보이더라니 그새 변고를 당했더라고.."


인상이 찌푸러졌다. 우리 나이쯤 되면 무소식이 오히려 희소식일 때가 더 많다.


"어쩌다."

"그게.. 그 할머니가 가족이 없잖아 글쎄. 하도 이상해서 복지사가 들렀는데 글쎄. 쓰러져서 죽은 지 며칠이 지나있었다더라고. 에휴.."

"..."




"그만! 그만!"


쓰다 보니 너무 우울하다. 이런 내용을 쓰려던 건 아닌데 길어지는 것도 별로니 이쯤 하자. 여하튼 하류 노인으로서 삶을 산다고 생각하니 우울함 그 자체구나.


그런데 이제는 하류를 넘어 표류하는 노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표. 류. 노. 인]은 또 뭐란 말인가?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돈다는 거?


우리나라도 일부에서 있을 법한 얘기지만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생기는 사회현상이라고 한다.


보통 연고 없이 혼자인 노인(대략 65세 이상으로 생각해 보자.)이 집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집에서 사망자가 나올 경우 다음 세입자에게 고지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일정 금액을 받고 집을 빌려주며 성립이 된다. 하지만 무연고의 노인이 늘어가면서 고독사에 노출되거나 뜻하지 않게 사후처리를 감당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임대인 입장에서 그런 위험까지 무릅쓰며 집을 임대해 줄 필요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혼자 남은 노인은 본인이 활동하기 좀 더 편한 곳에서 벗어나 점점 외지고 낯선 동네로 어쩔 수 없이 밀리고 밀려 고독한 표류를 시작한다.


'무서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문득 옆에 있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같이 지낸다고 해서 꼭 행복하진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최소한 내가 죽더라도 뒷수습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다소 앞서가는 생각. 그리고 현재 내 나이 40대 초반. 당연하겠지만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잘 살게 되진 않는다.


'표류 노인이 돼서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최소한 나와 내 아내의 마지막 정도는 책임지고 싶어.'


슬픈 현실도 현실이다. 당장 다가오지 않았다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되는 것도 아니겠지. 40대를 넘어 50대..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이상의 삶. 60, 70, 80대.. 까지 살 것이다.


남은 삶을 무기력하고 두려움 속에 벌벌 떨며 살고 싶지 않다. 하류도 표류도 아닌 평범 노인의 삶이라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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