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걸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왠지 둘 다 안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욕심이 마구 샘솟았다.
'이 책도 사야 하고.. 와!! 이건 유명한 거잖아! 당연히 사야지!'
미리 보기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바구니에 잔뜩 책을 담았다.
'원래 책 사는 건 아끼지 말랬어. 게다가 글 쓰며 성과를 내고 싶은 입장이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 합당한 비용 정도는 제공해!'
그렇게 사모은 책도 일 년 치 볼 정도는 쌓였다. 물론 빨리 읽는다면 더 빨리 읽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리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만 커져갈까.
정작 벌여놓기는 잘하는데 막상 수습은 또 못하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 소재로 써보면 좋을 거 같아! 어? 이 주제도 충분히 좋아 보이고. 둘 다 합쳐서 써볼까?'
하나의 글에 하나의 주제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것저것 그럴싸한 내용부터 시작해 화려하게 보일만한 소재를 합쳐서 쓰고 싶은 욕심이 그득그득 해졌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비슷하다.
하다못해 집에 인테리어를 할 때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여러 가지 콘셉트를 결합시켜 보다가 이도저도 아닌 괴랄한 톤 앤 매너의 내부가 탄생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조언을 구할 때면 괜한 노파심에 관심도 없어 보이거나 질문과는 무관한 썰을 마구 풀어내기도 했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말을 넘어선 조언을 가장한 간섭은 심해졌고 나아가 상대방의 삶을 쥐락펴락하려는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 심했다.
모든 게 욕심에서 시작돼 욕심으로 그릇치고 욕심 때문에 후회했다.
'다시는! 선도 넘지 말고. 필요한 만큼만 딱! 절제의 미! 알지? 알았지?'
하. 지. 만 숱한 다짐을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간미라고나 할까? (...)
[慾心] 바랄 욕, 마음 심 =>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특별히 나쁜 의미도 아닌데.. 욕심이라고 표현하니 왜 이리 부정적인 느낌이 들까?
내가 가졌던 바라는 마음이 잘못된 거라도 되나?
이상하게 욕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자 부정적인 기억이 잔뜩 떠올랐다.
Re1 :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왠지 둘 다 안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 둘다해.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고 해?
Re2 : 이 책도 사야 하고.. 와!! 이건 유명한 거잖아! 당연히 사야지!
=> 잘했어. 마음먹었을 때 마련해 놓는 것도 괜찮아.
Re3 : 이 소재로 써보면 좋을 거 같아! 어? 이 주제도 충분히 좋아 보이고. 둘 다 합쳐서 써볼까?
=> 해보고 싶은 대로 다 써봐. 아닌 거 같으면 다음엔 다르게 쓰고.
유치하게 답했지만 생각해 보면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잘해보려는 과정 속에 생겨나는 상황일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스스로 [욕심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던 거 같다.
'이런 욕심 한 번 부려도 될까?'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잖아. 잘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하던데..'
언제부터 스스로의 욕심에 제한을 두게 된 걸까.
언제부터 망설이기만 하게 됐을까.
언제부터 눈치만 살펴보게 돼버린 걸까.
어느 순간부터 몸에 자연스럽게 베인 타인에 대한 배려, 눈치, 관용적인 태도 등이 내 삶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넘어서려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 제지시켰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를 막아서는 행동.
'범인이 나였구나!'
범인을 색출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좀 더 당당해지자며 그만 눈치 보라고 응원도 했다.
40대가 되어서야 스스로에게 조금씩 당당해지려 한다는 게 다소 부끄럽다. 하지만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는 자세.
그렇게 욕심을 부려도 되는 자격을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