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71 걸음

by 고성프리맨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생활비에 보탬이 되겠다며 가장을 자처하고 일터로 떠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울 때가 있다.


"착한 척할 생각하지 마라?"


오늘도 친절하게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안심이 됐다. 역시 일관성 있어. 흐뭇한 미소로 아내를 바라봤다.


"뭘 봐?"




우리 동네는 비수기와 성수기의 차이가 극명하다. 아무래도 바닷가 근처 마을의 숙명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요즘 같은 시절에 동네에 놀러 와 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어쩌면 해피한 일 아닐까 싶다. 덕분에 여름엔 동네에 활기가 돈다.


"일하는 난 너무 힘들단 말이야‼️ 손님이 끝도 없이 몰려온다고오."


일하는 시간에 비해 강도는 높다 보니 늘 힘들어한다. 그런 그녀를 보고 고생했다며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여지없이 불만의 화살이 나를 향하곤 한다.


"후.. 내가 알바하려고 여기까지 왔어? 아니 왜 나만 고생하는데??"


큰일이군. 이럴 땐 자리를 피해야 하는데 바깥은 무더위라 나가 있을 곳이 없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복의 땅이겠지만 물도 싫어하고 발에 모래 묻히는 것도 싫어하다 보니 선택지가 별로 없다.


- 이사 갈 곳을 잘못 선택한 거 아니에요?


공교롭게도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는 건 좋아한다. 직접 들어가 있는 것만 아니라면 모든 게 좋다.


여하튼 아내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듣다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힘든 것도 사실이고 아르바이트를 언젠가 그만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 얘기를 털어놓은 후 기분이 좀 나아지는지 아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어쩌겠어.. 일단 나가는 대출금이 있으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퇴직금 받을 때까진 다녀본다. 내가! 이 가장 님께서! 희생을 하시겠다 이 말이야!"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그녀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너무 과하지 않도록 여상한 말투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절대로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돼.




내가 쓰는 글의 주인공은 보통 나다. 에세이의 특성상 [화자=주인공]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간간히 지금처럼 아내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내가 느낀 감정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상과 아내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아마 오늘 쓴 글을 보고 나면 분명 난리를 칠 것이다.


"이거 봐! 또 나만 나쁘게 써 놓고!!"

"아냐. 누가 나쁘게 보겠어. 그냥 그러려니 할걸?"

"누가 봐도 악처야 이 내용대로면. 억울해 죽겠네. 맨날 나만 악역이야 짜증 나게."

"뭐 먹을래? 오늘 밥 차려줄게."

"그럼 안 차리려고 했어?? 감히??"


흠.. 특별히 오버해서 쓰는 건 없는데.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내 기준에서는 오늘의 글도 그리 과장된 거 같지는 않은데. 물론 텍스트의 특성상 독자의 성향과 기분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여지는 있겠지.




사실 아내는 굉장히 평범하다. 무난하게 살아왔고 모난 구석이 없으며 심성도 착하다. 여기저기서 아내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 반면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은둔형인 남편과 달리 사회성도 좋고 책임감이 강하다. 그 덕에 나도 밥을 얻어먹고살고 있는 중이다.


- 아니 듣다 보니 당신 최악이네? 이거 이거..


어떻게 보면 최악일 수도 있겠다 싶을 때가 있다. 언젠가 아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아니 우리 엄마가 나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거 얘기 들을 때마다 얼마나 속상하겠어? 안 그래? 오빠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내가 둘러대는데 그때마다 자꾸 캐묻는단 말이야."


장모님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아려왔다. 평범하게 살거라 기대했던 딸이 고생고생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어떤 부모가 달가워할까? 게다가 사위인 내게는 차마 직설적으로 얘기도 못하시고.


"나니까 데리고 살아주는 거야. 감사하라고."


지금처럼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사.. 사..ㄹ..ㅎ?


넘어가자.




뿌듯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글을 보여줬다.


"이야.. 이렇게도 멕이는구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니?? 응? 똑바로 말 안햇?!"


무엇이 또 심기를 건드린 걸까.


"진짜 몰라서 그래?? 아오 진짜."

"오늘 하루도 진짜 고생 많았어. 고마워."

"응?"

"진심이야. 고생 많았어."

"갑자기??"


부부 사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언제는 이유 없이 화내다가도 또 이유 없이 풀리고를 반복한다. 세세히 파고들다 보면 당연히 이유가 없겠냐만은. 그래도 많은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되는 사이는 맞는 거 같다.


글로 표현하는 아내의 모습을 다소 과장되게 쓸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글이라도 읽고 어이없어서 헛웃음이라도 짓는 그녀의 표정이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


그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수많은 독자를 설득할 이야기라면 더 좋겠지만 일단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독자는 그녀다.


"미쳤네? 사랑꾼 코스프레 그만하고 밥이나 차려."

"응. 오랜만에 참치찌개 해줄까?"

"어. 맛있게 한 상 차리거라."


마침 찌개가 다 끓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밥 먹으며 직접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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