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회일까?

18

by 고성프리맨

3주를 채우고 아내는 퇴원을 했다. 그사이 생각보다 많은 일이 생겼다. 결국 아내는 퇴사를 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어떻게든 몸을 회복하고 출근을 강행하려 했으나 회사에서는 출근일을 앞당기라고 재촉하기만 했고 그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버렸다. 결국 홧김이긴 했지만 회사에는 건강 문제로 좀 더 출근일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통보했는데 화근이 되어 정리해고를 당해버렸다. 물론 회사는 어떻게든 귀책사유를 아내에게 있는 것으로 몰고 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권고사직으로 처리 방향을 잡았고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우울해했다. 당장의 생활비는 조금 들어오겠지만 그것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 중단될 일시적인 현금 흐름일 뿐이니까.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동안은 상당히 무기력해 보였다.




‘어쩌면 내 모습도 비슷했을까?’




아내에게서 낯설지만 익숙해 보이는 모습을 발견하자 괜스레 기분이 이상했다. 남편으로서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은 잠시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2일이 지났다. 여느 날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상품을 올리고 있을 때 아내가 다가왔다.




“오빠. 바빠?”


“응? 아니. 이거 하던 것만 마무리하려던 참이었어. 왜? 배고파?”


“그런 건 아니고. 대화 좀 하고 싶어서.”


“알겠어. 지금 바로?”


“하던 것만 마무리해. 나 잠깐 커피 하나만 사러 갔다 올게.”


“내가 사다 줄게 쉬고 있어.”


“아냐. 이젠 좀 돌아다녀도 괜찮아. 너무 집에만 있으니까 좀이 쑤시네.”




그래도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어서 다행이다. 얼마 전 사고 당해 누워 있던 그 모습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느낌이 든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하며 상품 소싱 작업을 마무리했다. 잠시 후 아내가 커피를 들고 나타나 한 잔을 내게 건넨다.




“고마워.”


“요 앞에 카페가 생겼길래 한 번 가보고 싶었거든.”


“근데 되게 크다.”




초대형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신기했다.




“그거 3천 원 밖에 안 한다?”


“어? 그렇게 싸다고?”




한 모금 마셔봤는데 맛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양도 많고 맛도 나쁘지 않은데 가격까지 저렴한 제품이라니. 문득 온라인상에 있을 수많은 경쟁자가 떠올랐다.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선 분명 지금의 커피처럼 가성비 끝판왕 같은 곳들이 많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이 틈에서 돈을 벌 수는 있는 걸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해.”


“나 괜히 그만둔 걸까? 갑자기 후회되는 거 있지..”


“어쩔 수 없었잖아. 그리고 이미 정한 일이고. 괜찮아.”


“그건 그렇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 이렇게 나까지 그만둬 버리면 큰일이잖아.. 휴.”




큰일인 건 맞다. 솔직히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담배 생각이 났다.




“그래서 말인데 지은아. 내가 좀 생각해 본 게 있어.”


“뭔데?”




아내한테는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라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 스캇이랑 통화를 했다.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는데 앤디처럼 반갑게 답장을 보내왔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스캇. 잘 지내죠?”


“그럼요. 회사 다닐 때 보다도 정신없네요 휴.”


“사업이 잘되나 봐요. 축하해요.”


“고마워요. 그래도 일의 양은 많이 줄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프는 어때요?”


“저는 뭐 좀 그래요.”


“무슨 일 있군요?”




목소리에서 감정의 변화를 느낀 스캇이 재차 물어본다. 결국 솔직히 모든 상황을 털어놨다.




“음.. 제프.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요.”


“네 오해할 게 뭐 있나요.”


“절대로 제프를 우습게 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는지. 그래도 괜히 긴장이 된다.




“건강 상태는 좀 어때요?”


“많이 호전됐죠. 이젠 몇 시간 정도 돌아다니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혹시 그렇다면 절 좀 도와주실래요?”


“네? 제가요?”


“네. 저도 항상 사람이 필요하던 차라. 일단 한 번 만날까요? 전화로만 하기엔 좀..”


“아. 좋아요. 언제 볼까요?”


“전 시간이 항상 많은 편이라 언제든 괜찮아요.”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좀 머리 아픈 일이 늘 있어서 그런 건데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어디 사신다고 했죠?”




사는 곳을 얘기해 주었다.




“와 그 동네 살아요? 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넨데. 거기 시장도 가깝고 좋잖아요. 이야.”


“이 쪽 살았었어요?”


“네네. 신기하다. 그럼 음.. 한 3시간 뒤에 제가 동네로 놀러 가도 괜찮을까요?”




스캇은 실행력이 굉장한 사람이다. 문득 급한 성격이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이요? 하하. 저야 뭐 괜찮은데. 좋아요.”


“그럼 이따 봐요. 동네에 조용한 카페 있죠?”


“네네. 일단 주차는 저희 단지에 하면 되니까 만나서 이동해요.”


“오케이. 이따 봐요!”




갑작스럽게 전화를 걸었는데 일자리 제안까지 한다. 아직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불안함은 있다.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라.. 그렇다면 뭔가 허드렛일을 얘기하려는 건가? 만나서 얘기 나눠보면 알겠지.’




“누구 전화야?”


“어. 예전 회사 동료.”


“오빠는 예전 동료들하고 아직 연락해? 신기하네.”


“그러게. 뭐 많이는 아니고 몇 명 안 돼.”


“그래도 신기하다.”


“좀 이따 만나기로 했어.”


“어? 오늘?”


“응 뭐 얘기하다가 갑자기 만나기로 해서. 그리고 그 친구가 사업을 하고 있거든. 나한테 뭔가 일을 좀 부탁하고 싶다고 하네. 무슨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단계나 뭐 사기 이런 거 아니겠지?”


“아니야 그런 사람은. 이따 만나보고 올게.”


“그래. 그래도 혹시나 이상한 얘기 하면 피하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아내는 걱정이 많이 앞서나 보다.







“도착했어요 제프.”


“지금 갈게요.”




1층으로 내려가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담배를 태우고 있는 스캇이 보인다. 나를 발견한 스캇이 급하게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흔든다.




“와. 오랜만이에요. 그대로네요?”


“늙었죠. 피부가 아주 엉망이에요 하하. 스캇도 그대로네요.”


“하핫. 고마워요.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네요. 카페가요.”




가까이에 새로 생긴 카페로 이동했다.




“뭐 마실래요? 커피 제가 살게요. 멀리까지 와줬는데. 시간만 괜찮았으면 식사라도 샀을 텐데.”


“에이. 제 맘대로 정하고 만나자고 했는데요 뭐. 그럼 감사한 마음으로 마실게요.”




커피를 시킨 후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스캇은 민망할 정도로 빤히 날 쳐다봤다.




“얼굴에 뭐 묻었어요? 민망하게.”


“아. 제가 너무 빤히 쳐다봤죠. 습관이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동네까지 와줘서 덕분에 편하네요.”


“제프가 솔직하게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저도 안 왔을 거 같은데 이것도 인연이죠.”




때마침 진동벨이 울린다.




“제가 가져올게요.”




잽싸게 진동벨을 낚아채더니 스캇이 커피를 들고 온다.




“잘 마실게요.”




우리는 함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잔을 내려놓았다. 공기가 살짝 무겁다.




“궁금하죠? 제가 아까 일 얘기 꺼내서.”


“네. 갑작스럽긴 했지만 계속 생각은 나더라고요.”




그는 퇴사 후 운영하는 고시텔 외에도 게스트 하우스와 편의점도 몇 개 돌리고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지고 장사도 잘돼서 좋긴 한데 혼자서 모든 걸 다 운영하는 게 버겁다고 했다.




“아내는 편의점 운영을 맡아서 해주고 있긴 한데 다른 건 도와줄 여력이 안되고.. 지금 하는 거 외에도 전 다른 분야도 도전해 보고 싶은데 도저히 시간적 여유가 안 생기네요. 그래서 말인데. 고시텔 1개를 위탁 운영해 줄 수 있을까요 제프가?”


“고시텔 운영이요? 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만약 할 의향이 있으시면 제가 수익률은 괜찮게 분배해 드릴게요. 7:3 해줄게요. 고시텔 수익이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분명 살림에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해요. 물론 일이 쉽지는 않지만요.”


“제안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제가 정신이 혼미해서. 아내랑도 상의를 해봐야 하고. 아.. 그리고 사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니까요. 그리고 제 어디가 맘에 들어서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시는지도.”


“제가 제프 성격을 모르겠어요? 그리고 전 믿어요. 개발자 했던 사람 중에 성향 나쁜 사람 별로 없잖아요. 아내분이랑도 충분히 상의해 보세요. 저도 일단은 제안을 하는 거니까.”




고시텔 운영 업무에 해당하는 일은 [SNS 관리, 예약 관리, 청소 (이 부분은 설명할 내용이 좀 있음), CS, 정산, 홈페이지 관리, 회계사와 협업, 객실 관리] 이 정도가 있다고 한다. 얼핏 들어서는 어떤 일인지 잘 감이 안 잡히기도 하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중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은 청소가 있어요. 제가 사람을 쓰면 청소 1건당 2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있는데 만약 이 부분은 제프가 처리할 수 있다면 그 비용은 제프에게 대신 지급할게요. 아까 제가 전화로 고민했던 이유 중에는 청소를 얘기하는 게 실례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기도 해요.”




전체적인 제안을 듣고 나니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해달라는 얘긴 아니에요. 저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집중을 좀 해야 하거든요. 자본도 좀 필요하고. 그동안만 좀 부탁하고 싶은데 한번 잘 고민해 봐주세요. 그리고 분명 이 경험을 하고 나면 제프도 돈 벌 방법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스캇은 구체적인 고시텔 한 달 수입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줬다. 내게 부탁하는 고시원은 여성 전용이고 객실은 15개가 있다고 한다. 한 달 월세는 인당 70만 원이니 공실이 없다면 1050만 원이 된다. 스캇이 제시한 수익배분에 따르면 최대 315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이다. 청소는 달에 몇 건이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건당 비용을 지급해 줄 의향이 있다고 하니 그 부분까지 고려하면 지금 우리 가족에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일이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시고 내일모레 안으로 얘기 줄 수 있으세요? 저도 사람이 정말 급히 필요한 거라.”


“네 내일 최대한 빨리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너무 걱정 마세요. 일이 좀 익숙해질 때까지 제가 붙어서 과외도 해드릴 거니까요 하하.”


“오늘 여러모로 고마워요 스캇.”




스캇을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누른 후 바쁘게 머리를 굴려본다.




‘무조건 잡아야 하는 기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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