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술술 풀리는데?!

19

by 고성프리맨

그날 아내에게 스캇과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다 듣고 난 아내는 1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해야지!”


“어? 정말? 근데 해본 적도 없는 일인데..”


“뭐 누군 첨부터 알고 하나? 배우면서 하는 거지. 청소비용도 챙겨 준다며. 그 정도는 나도 도울 수 있어! 꼭 한다고 해.”




‘하지 말라고 하거나 생각 좀 해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감이 바꿔놓은 건 아닐까? 예전 같았으면 청소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인상을 구겼을 거 같은데 스캇이 해준말이 하나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게 어떤 것이라는 걸 일 년도 채 안 되는 사이 몸으로 느끼고 배운 듯하다. 그리고 스캇의 일을 돕다 보면 배우는 게 분명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돈 버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내게 있어 나아가 우리에게 있어 돈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니까.




“알겠어. 한다고 할게.”


“바로 보내면 좀 없어 보일까?”


“음.. 그냥 보내지 뭐. 오히려 절실해 보이니까 더 낫지 않을까?”




[스캇. 오늘 제안해 주신 내용 충분히 생각해 봤어요. 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렇더라도 한번 맡겨준다면 최선을 다해 빨리 습득할게요. 같이 일해보고 싶어서 빨리 연락드렸어요.]




‘연애에도 밀당이 필요하듯 세상 일이 너무 절박하게 보이기만 하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보내고 나니 너무 없어 보이는 느낌도 들고 괜히 초라하게 느껴진다. 메시지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온 신경이 휴대폰으로 가 있다.




“오빠.. 그러다 눈 찢어지겠어. 보냈으니까 보게 되면 연락 오겠지.”


“그.. 그렇지? 하하. 나도 참.”


“절실해 보이네. 나랑 얘기할 때 느꼈어. 오빠가 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래 보였어?”


“응. 다 티 났는데? 아마 스캇이란 분도 느꼈을 거 같아. 그리고 분명 사람이 필요하니까 제안을 했을 거라 생각해. 믿을만한 사람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렇다고 하기엔 스캇이랑 뭐 엄청난 친분이 있는 건 아닌데.”


“됐어. 뭐 어쩌겠어. 필요에 따라 만나게 되는 인연도 인연이지. 그리고 먼저 연락한 건 오빠잖아. 그런 행동도 난 용기 있었다고 생각해. 아무나 그러는 거 아니다? 나보고 예전 동료한테 연락하라고 하면 절대로 안 할 거야.”


“뭐 크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당신 말대로 상황이 좀 절실해지니까 이것저것 주변에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지는 거 있지. 그랬다고 그냥.”




아내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휴대폰으로 쏠렸던 긴장감도 좀 사라졌다. 그때 진동이 왔다. 나도 모르게 황급히 폰을 집어서 화면을 본다.




[고마워요 제프.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할까요? 저도 제프가 꼭 도와줬으면 했는데 잘됐네요. 그리고 하나 알아두셔야 할 게 우리 일은 따로 휴일 개념이 없어요. 짬을 내서 쉰다에 가까운데 그 부분도 조금씩 노하우가 쌓일 거예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요.]




“좋아!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같이 하기로 했어!”


“와..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일도 구하고. 신기하다.”


“그러게. 기대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근데 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스캇이 신규 사업 준비하는 동안만 하기로 한 거라서. 나중에 아마도 고시텔 정리할 생각이겠지. 어쩌면 이미 준비 중일 수도 있고. 너무 큰 기대를 가지지 않으려고. 그러다가 크게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그래도 뭐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으니까.”


“줄 수 있는 것도 최대한 키워놔야겠어.”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김서방. 그때 얘기 나눴던 건 어떻게 준비 좀 되고 있나?”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고 했어요 어머님. 안 해본 일이라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는데 디자인 작업은 얼추 마무리 돼가고 있어요. 사업자는 이미 냈고요.”


“그래. 잘 준비해서 해봐.”


“네. 감사합니다.”




아내가 병실에 있을 때 숙부님들이 오셨었다. 아내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숙모님 한분은 우시기도 하셨다. 어쩌다 이렇게 사고가 겹쳤나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무거운 분위기에 다들 말이 한동안 없어졌다.




“얘들아. 김서방 하고 할 얘기가 있잖아. 가서 얘기하고 와. 여자들은 여기서 좀 얘기 나누고 있을 테니까.”


“네.”




대답을 끝으로 나를 포함한 세명은 병원 1층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많이 힘들지?”


“조금은요.”


“그래. 소식 듣고 착잡해지더라고. 그래도 너무 걱정만 하지 마. 어디 살면서 고비 한번 안 겪어본 사람이 있나?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도 힘든 때가 있었어. 그때 누님이 돈도 빌려주고 도와줘서 겨우 해결할 수 있었지.”




얼핏 아내에게 들은 적이 있다. 큰 숙부님은 젊은 시절 도박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어서 돈을 버는 족족 도박판에 가져다 바치기 일쑤였다. 결국 도박 때문에 집도 날리고 땅까지 담보로 잡히는 상황이 되자 숙모님과 이혼까지 얘기가 나왔고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셨다고 했던 일. 그때 장모님이 돈까지 빌려주셨다는 건 몰랐는데.




“자 앉아. 뭐 마실래?”


“형. 난 따뜻한 커피 한잔.”


“그래. 김서방은?”


“저도 같은 걸로 마시겠습니다.”




남자 셋이 앉아 있으니 그 자체로도 공기가 무거웠다. 이번이 3번째 밖에 되지 않는 만남이라 어색함까지 더해져서 숨 쉬는 것도 힘든 기분이다.




“에이 뭘 또 그렇게 죽을 상을 하고 있어. 어색해서 그렇지? 뭘 또 남자가.”




작은 숙부님은 호탕하게 내 등을 탕탕 두드리시며 분위기를 유쾌하게 바꾸려고 하셨다. 그래도 그런 모습에 어색함이 살짝 사라지고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민망하네요. 찾아뵙지도 않다가 갑자기 농작물 팔아보겠다고 연락드려서.”


“뭘 또 민망해. 그래 말이 나왔으니까 일단 일 얘기부터 해볼까.”




두 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한분은 주로 과일을 위주로 하고 다른 숙부님은 작물을 위주로 하신다. 일단 취급 품목은 나름 다양하게 확보가 가능하다. 그리고 큰 숙부님은 즙을 짜서 파는 건강원을 운영한 지도 오래되셨다. 물론 건강원에서 일어나는 매출은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도 힘든 작은 매출이 일어나는 게 전부. 자녀들도 장성하고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보태줘야 할 돈이 늘었다고 한다. 기숙사비부터 시작해 생활에 필요한 돈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다 보니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렇게 온라인 판매에 대한 소식을 접하셨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배워가며 팔아봐야지 싶었지만 생각보다 판매가 저조해 머리가 아프시다.




“우리 일을 도와서 맡아준다는 대행사? 맞냐?”


“어 맞아 형.”


“그래. 뭐 알아서 해준다고 하더라고. 나야 뭐 잘 모르니. 그래서 계약을 맺었어. 근데 진짜 이 새끼들이 아주.. 사기꾼 놈들이야.”




약속했던 만큼의 매출보장이 되지 않으면 환불해 준다고도 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연락도 잘 받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계약해지를 요구했더니 계약서에 들어가 있는 위약금 얘기를 꺼내며 오히려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뭐 한동안은 유입이 좀 있긴 했어. 구매도 몇 건 정도는 있었던 거 같고. 근데 그게 다였어. 뭐 그 뒤로는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이상한 지표나 숫자 얘기만 하고. 지들이 잘못한 게 없다 이거지.”


“됐어 형. 그냥 알아서 해주겠거니 생각한 우리 탓이지 뭐. 그래서 오늘 만나는 거잖아. 김서방 컴퓨터 잘하는 거 알잖아.”




어른들은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숙부님들이 필요로 하는 마케팅은 나도 초보자일 뿐인데. 그렇다고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다.




‘까짓 거 부딪쳐 보면 되지.’




“그래 김서방은 어떻게. 한번 같이 일해볼 생각 있어?”




숙부님 두 분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살짝 긴장이 됐지만 말을 꺼낸다.




“네. 일단 제가 생각해 본 것들이 좀 있는데. 설명을 한번 드려볼까요?”


“그래 한번 들어보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고 설명을 시작한다.




1.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 위한 사업자를 낸다.


2.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다. 디자인에 포함되는 건 제품 패키징, 로고, 상호, 종이박스 등 상품 판매와 관련된 전반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비용 소모가 됨을 강조.


3. 디자인 작업이 완료되면 패키징에 필요한 비닐봉지나 여러 가지 박스나 스티커를 숙부님들께 보내드린다. 그 후 포장절차 및 배송을 진행해 주셔야 함을 알려드렸다.


4. 교환/반품에 대한 가이드를 만들고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한다.


5. 홍보에 대한 방향은 SNS와 지역 기반 타깃 마케팅을 시작하기로 한다. 비용 발생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번 얘기드린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수익률 정산에 대한 부분만 제외한 나머지 틀에서의 절차를 공유드렸다. 두 분은 끄덕거리시며 내 얘기를 경청해 주셨다.




“믿음직스럽구먼.”


“괜히 개발자가 아니네. 안 할 이유가 없겠는데. 어때 형?”


“우리는 농작물만 잘 생산해 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고 하니. 하하.”


“그리고 디자인이나 뭐 그런 거 경비 드는 건 우리 둘이 다 낼 테니까 김서방은 운영만 잘하시게.”


“아닙니다. 숙부님. 일단 저도 같이 하기로 한 이상 그 부분의 비용은 제가 부담하는 게..”


“어허. 그러면 우리도 누나한테 체면이 안서. 받은 도움이 얼만데! 그런 건 걱정 말고. 그리고 동생아 네가 얘기 꺼내라.”




두 분은 눈짓을 주고받는다.




“아? 그 얘기. 그려. 아주 곤란한 건 나보고 하라고 하네 맨날.”


“그냥 좀 해라.”


“알겠어. 그래 김서방도 궁금하겠지. 판매되고 나면 월 단위로 해서 수익의 30%를 줄까 하는데 성에 안 차겠지만 우리도 뭐 돈이 안 필요한 건 아니라서. 조금 미안하네.”




30%!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10%만 준다고 해도 감지덕지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30%면 정말 많이 신경 써 주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숙부님들. 30%나 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저야 뭐 잘 팔리게 운영만 하는 일인데.. 나머지는 두 분께서 힘써주셔야 하고.”


“승낙하는 의미로 이해할게? 으하하. 그것만 잘해주면 돼. 많이 팔리면 나중에 좀 더 수익 배분을 더하자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두 분은 따스한 눈빛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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