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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호들갑스러운 아내의 목소리가 아침부터 신경을 긁는다.
‘별거 아니기만 해 봐라.’
“커피 사러 나갔다고 들어오는데 우편함에 꽂혀 있던 거야. 이상해서 뜯어보니까 내용증명서라고 써져 있는데.. 이거 괜찮은 거야? 나야 뭐 잘 모르지만 큰일 난 거 같아서.”
“응? 내용증명? 그런 게 우리한테 왜 와..”
설마? 또 구매대행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걸까. 최근에 몇 번의 전화와 메일을 받긴 했었는데 오픈채팅방에서 물어보니 무시해도 될 거 같다고 해서 신경도 안 썼던 게 문득 생각났다. 내용증명에 써져 있는 내용을 보니 문제 생겼던 헬스장에서 사용하는 기구 때문이다. 어떤 상품을 소싱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크고 무겁고 다른 사람이 잘 취급하지 않는 걸 해보면 어떨까 싶어 찾아낸 아이템이었다. 무게는 거의 100kg이 넘어 특수화물로 취급이 돼서 처음 판매가 이뤄지고 나서는 정신이 혼미했던 기억도 난다.
우연한 기회에 헬스장 한 군데에 판매가 이뤄졌고 내가 올린 물품이 가성비가 좋아서인지 소개를 통해 5개 정도를 더 판매한 상태였다. 마진율도 나쁘지 않아 1대만 팔아도 자잘한 상품 20개 정도 팔아야 남는 수익이 생겨 나름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는데 문제는 몇 주 전 발생했다. 알 수 없는 업체 번호로 전화가 와서 처음에 스팸인 줄 알고 안 받아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근데 그날따라 기분이 좀 멜랑콜리해서 받아버렸다.
“안녕하세요. 지희스토어 대표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가요?”
“혹시 헬스장 대형 운동기구 취급 중이시죠?”
“네. 뭐 구매대행 조그맣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희가 보낸 메일을 보셨을까요?”
“메일이요? 아직 확인 못했는데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그러시면 일단 메일 한번 확인하신 후 메일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전화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내용에 동의하시면 확인하신 후 합의 절차를 진행하시면 되겠습니다.”
“합의요?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일단 메일을 읽어 보세요.”
짜증스러운 느낌으로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말을 내뱉는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일단 알겠습니다.”
떫떠름하게 전화를 끊고 메일을 검색해 봤다.
‘어디 보자.. 어? 언제 이런 메일이.’
내용을 읽어 보니 내가 올린 상품이 국내 독점 판매 계약이 맺어져 있는 상품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상표권 침해로 인한 합의절차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는데 정확히 금액이 써져 있지는 않았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구매대행을 시작한 걸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 일단 가입되어 있는 구매대행 오픈채팅방에 문의글을 올렸다. 잠시 기다리자 몇몇 사람이 메시지를 남겨놓는다.
[아 ㅋㅋ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런 놈들 태반이 그냥 찔러보는 거예요. 무시하세요.]
[음.. 마냥 무시하면 안 될걸요? 혹시 모르니까 정말 독점계약이 되어 있는지. 상표권 침해한 게 맞는지부터 확인을 하셔야 할 거 같은데. 무료 법률 상담 같은 거 한번 받아보세요.]
[저도 같은 업체한테 내용증명받았어요. 합의금으로 300만 원 요구하길래 너무 억울하고 당황스러웠어요. 사정사정해서 150만 원으로 합의 봤네요.]
[정말 합의금을 냈어요?]
[무시해도 될 텐데..]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그렇게 고민하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다. 그 결과로 결국 내용증명서를 받고야 말았다.
‘아.. 멍청이! 까먹을 게 따로 있지. 휴. 톡방에 있는 인간들도 잘 모르면서 아는척해서.’
어쩌면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답이 듣고 싶어서 덜컥 그 말을 믿은 내 죄겠지. 하지만 남탓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아··· 까먹고 있었어. 그때 담당자가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오빠! 까먹을 게 따로 있지. 휴.. 근데 뭔데 그래?”
어떤 상품인지 상세히 설명하고 그간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도 아내에게 얘기해 주었다.
“어떡해. 매출도 잡힌 거네.. 지금이라도 전화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무작정 전화해서 뭐라고 하지..”
“방법이 없잖아. 나도 이런 건 아는 게 없어.”
결국 등 떠밀려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지희스토어 대표 김선호입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제가 내용증명서를 받았는데 적혀있던 번호로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지희스토어라고 하셨죠? 잠시만 좀 찾아볼게요.”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입이 바싹 마르고 있었다.
“찾았네요. 김선호 님. 음.. 합의 관련해서 전화를 주시지 않으셨네요. 저희가 이번에 상표권 침해한 업체를 대상으로 전체 우편물 발송을 했습니다. 소송을 하게 되었는데 혹시 합의 의사가 있으실까요?”
“소.. 소송이요?”
소송이라는 얘기를 듣자 정신이 확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아내의 표정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네. 합의 의사를 미리 밝히지 않으셔서 이대로 간다면 법원에서 뵙겠네요. 혹시 지금이라도 합의에 대한 생각이 있으실까요?”
“다.. 당연히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렇다면 저희가 보내드리는 문서 작성을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 반성에 대한 내용을 써주셔야 하며 다시는 해당 상품을 팔지 않겠다는 각서도 써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합의 절차에 들어가면 합의금을 내시면 되겠습니다.”
합의금. 얼마나 내게 되는 걸까? 갑자기 억울해지기 시작한다. 난 고작 영세한 소상공인일 뿐인데. 그것도 혼자서 운영하는 구매대행이라고. 그런 내게 돈을 뜯어가는 게 과연 도리에 맞는 일이야? 정리되지 않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냈다.
“혹시 얼마나 내야 할까요?”
“저희가 모든 소송 대상의 스토어에 일괄로 요청하는 금액은 500만 원입니다.”
“네? 500이요? 말도 안 돼요. 전 진짜 억울해요. 이거 저 혼자 부업처럼 겨우 먹고살려고 시작한 구매대행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이미 소송이 들어간 상태라 어쩔 수 없습니다.”
상황이 안 좋음을 느낀 아내도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500만 원이면 팔아서 남겼던 수익을 다 토해내고도 몇 배로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져 버렸다. 돈 벌려고 시작한 일 때문에 큰 손해를 보게 돼 버렸다.
“저.. 선생님. 혹시. 조금 깎아주실 순 없을까요? 제가 몇 개를 팔긴 했지만 진짜 남는 게 거의 없거든요. 그 돈 마련하려면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그래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원칙적으로 합의금에 대한 조정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도 대행으로 지시받아 일을 처리하는 상황이라 마음대로 조정을 하고 그럴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한 번만 회사에 전화해서 얘기해 봐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도 바빠서 그렇게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도 딱하게 얘기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본사 담당자 번호를 하나 알려줬다.
“제가 알려드렸다는 얘기는 하지 마시고.. 한번 걸어서 얘기 나눠보세요. 뭔가 얘기가 잘 이뤄진다면 그대로 진행을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겨우 희망의 끈을 하나 잡고 나니 활로가 보이는 기분이다. 하지만 합의금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뼈가 아프다.
“큰일이네.. 500만 원이나 내야 한대?”
“하.. 원칙적으로는 그렇다는데 어떻게든 조율해 볼게. 꼭 해야지.”
“구매대행 접으면 안 돼? 돈도 안되는데 뭐 이래.”
“미안해. 내가 법적인 걸 잘 모르다 보니..”
쉽게 시작할 수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다고 여겼던 구매대행업도 벽이 존재했다. 그 벽의 높이는 마주하기 전까지 절대 실감할 수 없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신가요?”
소개를 시작으로 말을 꺼내자 상대방은 귀찮다는 듯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한다. 그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여기서 협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합의금에 지장이 간다.
“합의금 조정을 원한다고요? 죄를 저질렀으면 달게 벌을 받으셔야지. 원래 수업료가 비싸요. 허허.”
“한 번만 살려주세요. 지금 자칫 잘못하면 선생님은 저희 가족을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게 되시는 거예요.”
“아니. 내가 왜 당신 가족을 죽음으로 이끌어? 말이 좀 그렇네? 나 바쁜 사람이야. 끊읍시다. 대화가 안 되네. 쯧.”
하지만 어르고 달래 가며 전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통화한 지 20분이 지날 때쯤 상대방이 한숨을 크게 내쉰다.
“하아. 나도 바쁜데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지성인이. 알겠어요. 다는 안되고 300만 원으로 합시다. 어떻게 300은 가능하겠어?”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본다. 잘 대답해야 한다.
“네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죄짓지 않겠습니다.”
“알겠어요. 만약 상품 팔고 싶으면 로열티 지불하고 팔아요. 싸게 해 드릴게. 흐흐.”
비릿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그와의 통화를 끝마쳤다.
“300만 원으로 줄였어..”
“잘했는데 그래도 너무 비싸다.”
“지은아.. 퇴직금 들어오면 좀 써야겠는데..”
아내는 말이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내의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눈치를 봤다. 아내는 계속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한숨을 쉬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심이 섰는지 입을 뗀다.
“피 같은 생돈이 날아가서 내가 기분이 좀 많이 안 좋아. 오빠 정말 제대로 좀 하자. 일단 어쩔 수 없으니 퇴직금에서 합의금 보내주기로 해.”
“미안하다 지은아. 나도 이런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어. 고마워.”
현실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매를 맞아가며 혹독하게 배워가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많이 생긴다. 현실에서의 매는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른다. 이번에는 돈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매였는데 앞으로 또 어떤 험난함이 생길까? 잘해보고 싶었고 열심히만 하면될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회사라는 테두리가 있어서 보호해 줬다면 이제는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의 실수를 까먹지 말자.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 해. 부끄럽고 뼈아픈 실수 하나는 그렇게 내가 홀로서기할 수 있는 경험치를 좀 더 높여줬다. 그나저나 아내에게 면목이 없다. 원래 내 것이었다고 생각한 걸 잃어버리는 마음이 참담할 뿐이다. 하지만 나쁜 기운은 빨리 털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