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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

그냥 써 보는 이야기 22

by 고성프리맨

밤이 되었다.

사람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추우면 입어야 하는 본능을 이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자! 오늘 사냥감이 형편없었으니 나눠 먹을 수 있는 양도 적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불만 가지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 식사합시다."


몇몇은 벌써부터 불만족스러움이 티 날 정도로 얼굴에 드러나있다.


"저... 우리 애가 너무 배가 고파해서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사냥에도 참여하지 않는 주제에 어딜 감히!"

"죄송해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병세가 점점 안 좋아져..."

"니가 먹는 걸 나눠 주던가 해! 어디서 애를 팔고 자빠졌어."

"자자! 그만합시다!"


아이의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로 빠졌다.

다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사냥감은 늘 부족하게 잡히기도 하고, 잡을 수 있는 인원도 제한적이다.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다. 괜한 미움을 사기라도 하면 집단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럴수록 생존확률은 낮아질 게 뻔하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내다 보면 구조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저녁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기세 좋게 떠들거나 따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떠들 기력도 없는지 다들 잠잠해졌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어찌 됐건 다들 각자의 살길에 대한 고민을 끝낸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이러한 분위기는 지속될 거다.




"크, 큰일이에요! 다들 일어나 보세요! 형길 님이.. 형길 님이 죽었어요."

"뭐라고요!"


장형길. 무리 사이에선 리더로 인식되는 사람이다. 딱히 리더를 하겠다고 나선적은 없었지만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커다란 몸집을 가진 그 앞에 대들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사냥에도 적극적이었으며 균등하게 식사를 배분함에 있어 항상 앞장섰던 그였다.


'대체 누가 죽인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한 외에는 달리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저 사람을 죽이면 대체 누가 사냥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새낀지 생각이 없네.'


아니나 다를까, 내 생각을 공유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폭언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죽은 이에 대한 슬픔보다는 먹이를 구해올 사냥꾼이 사라졌음에 대한 분노가 더 커 보였다.


"야. 너가 죽인 거 아냐?"

"아니에요! 뭔 소리예요?"

"아니 네가 죽이고 나서 우리에게 알렸을지 누가 알아? 여기 본 사람 있어? 그냥 너 혼자 하는 소리잖아. 하... 이 새끼 이거 인상이 안 좋더라니. 왜 그랬냐?"

"뭐, 뭔 소리예요! 저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제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왜 괜한 사람 마녀사냥하려고 하는데요? 몰아가는 게 수상한데 아저씨가 범인 아니에요?"

"뭐 이 새끼야? 너 이리 와봐."


이런 상황에선 여지없이 터지는 일중 하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는 반복된다 했던가. 수습은커녕 일을 키워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나 찾는 꼴이라니.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괜한 소리 했다간 돌이킬 수 없으니 조용히 있어야 한다.




사흘이 지났다.

무리는 이미 세 갈래로 찢어졌다. 리더 역할을 하던 사람이 죽었을 때 이미 어느 정도는 예견된 일이었다. 마음이 맞거나 혹은 본인의 이득에 부합하는 이끼리 뭉치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다. 여전히 리더의 죽음은 누구의 소행인지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우리 중에 한 명이란 사실이겠지. 누군지는 몰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이간질로 잘도 관심을 돌렸구나 싶다.


세 무리의 사람들이 떠나자 남은 이는 나를 포함해 6명이 남았다. 이중 3인가족과 커플이 있으니 사실상 난 혼자 남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묻어가려 했건만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는지. 쓴웃음이 나도 모르게 지어졌다.


"저기, 괜찮으세요?"

"네? 뭐가요?"

"우리끼리라도 같이 뭉쳐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의 리더인 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감사합니다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요."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절대로 저 쪽 가족과 함께하진 않을 생각이다. 물론 커플이랑도 같이 움직일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있어 난 완벽한 타인일 뿐이고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버려질 게 분명하다.


"먼저 갈게요. 다들 안녕히 계세요."


어차피 생각이 정리되는 건 글러먹은 거 같으니 혼자 일어섰다. 차라리 다른 무리에라도 섞이는 게 낫지 않겠나. 그렇다고 아무도 붙잡지 않는 건 좀 심하잖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주식 삼아 겨우 살아내고는 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걷는 것도 지친다.

그나저나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릴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무리에 속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컸었는데 지금은 속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혼자서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첫 번째 무리를 만났었다.

정확하게는 이틀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건만, 살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들을 마주쳤을 땐, 거대한 힘에 의해 찢겨 있는 듯한 조각들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목적도 방향도 정하지 않은 채 황급히 도망쳤다.

이상함을 눈치채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엔 두 번째 무리의 죽음을 목격했고, 다다음 날엔 세 번째 무리의 파멸을 마주했다.

이로써 내가 속할 수 있는 선택지는 완벽히 지워져 버렸다.




남은 희망은 가족과 커플뿐이다.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먹은 게 부족한 상태에서 몸을 많이 움직여서인지 더 이상 기력도 생기질 않는다. 과일만 먹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제는 입에 넣거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대로면 나도 죽는 건가.'


이미 생에 대한 의지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커플을 차례로 발견했다.


"하하하하하. 다 끝났어."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크르르르-"


순간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수풀 속에서 안광을 내뿜는 존재의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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