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조건 찬성.

9

by 고성프리맨

[이유 불문하고 지금 당장 죽으십시오.]


“왜 자꾸 죽으라고 하는 건데!”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조용히 죽음이 스며들어 영혼을 부식시키는 느낌이었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가쁘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시선은 자연스레 주변을 훑었다. 아까 전에 들렸던 말 [도구를 활용하십시오. 위치 전송 중…] 때문이었다.


미니미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작은 노이즈처럼, 마치 오래된 텔레비전 화면의 픽셀이 뒤틀리는 식이었다. 눈동자의 반사가 어긋나고, 입술이 여러 겹으로 갈라졌다. 미니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 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다. 반복되는 구절이 쇳소리와 섞여 공중에 퍼졌다.


“괘앤차않아아? 괘——앤————찮——————아————?”


음절이 늘어날 때마다 몸이 갈라져서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어느새 공간은 법칙을 잃었다. 벽에 걸린 시계 침은 제자리에서 흔들렸고 그림자는 방향을 잃은 채 산발적으로 생겼다. 갑자기 미니미가 웃었다. 동시에 메시지가 들렸다.


[서랍 속에 있는 흑색 파우치 속의 내용물로 지금 당장 죽으십시오. 남은 시간 20초. 변형 수치 상승 중. 19초 남았습니다. 시간 초과 시 개입 불가. 생존 보장 불투명. 다시 한번 얘기드립니다. 지금 당장 죽으십시오.]


침대 옆 서랍을 찾아 시선을 움직이다 발견하고는 바로 뛰었다. 서랍 안에는 작은 흑색 파우치가 있었다. 평범한 파우치였다. 지퍼가 달려 있고, 표면은 딱딱한 가죽재질로 되어 있었다. 손을 뻗어 파우치를 집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바닥에 남았다. 크기에 비해 무게가 있었다. 지퍼를 열었을 때 들어 있던 도구를 본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런 걸로 진짜 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본능적 금기가 거세게 맞서왔다. 비겁하고 평범할지언정 이제껏 살고자 몸부림쳐온 사람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도구 발견! 남은 시간 10초. 인생 종결 옵션 활성화 가능. 동의 시 ‘응’ 비동의 시 ‘아니’를 떠올려 주십시오. 다시 얘기드리지만 시간이 끝나면 도와드릴 방법은 없습니다.]


‘인생 종결 옵션? 죽이겠다는 얘기잖아?’


그럴듯한 단어로 바뀌었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우치를 꽉 쥐었다.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벌고 싶었다.


[경고: 감정 불안정 수치 상승.]


끼기기기기기기기긱—————.


눈을 떴을 때, 미니미는 더 이상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노이즈가 뒤엉킨 얼굴, 다층으로 갈라진 얼굴, 뒤틀린 눈동자. 목소리는 쇳소리와 과거 댓글이 섞인 합성음이 합창처럼 합쳐져 공중에 퍼졌다.


[서울 아파트 지금 못 사면 인생 끝임 ㅋㅋ 분당이니 용인이니 다 거지 마인드. 대출 풀로 땡겨서라도 강남 입성 못 하면 그냥 패배자 인정?

ㄴ 이런 놈 치고 집 가진 놈 못 봄 ㅇㅇ


MZ세대 돈 없다고 징징대는 거 역겹네. 우리 때는 IMF도 버텼다. 니들이 커피 줄이고 주식만 했어도 벌써 강남 아파트 두 채는 있음.

ㄴ 커피 사 먹을 돈은 있음?


애 낳기 싫으면 군대라도 가라. 안 낳고 안 싸우고? 그러면 도대체 국가에 뭘 기여하는 건데 ㅋㅋ 버러지들.

ㄴ 국가에 기여? 기여어? 자랑할 게 군대온 게 전부인 ㅂㅅㅌ

ㄴㄴ 인간관계도 ㅎㅌㅊ다에 한표던짐.]


기괴한 웃음소리와 뒤섞인 미니미의 말속에는 과거에 내가 써 내렸던 글귀의 파편이 겹쳐있었다.

온라인에 남겨놓은 온갖 쓰레기들. 신경질적인 반응. 마치 무대 위의 소품처럼 반짝이며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쓰레기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6초 남았습니다! 선택해 주십시오.]


설마 이 모든 게 과거에 남겼던 죗값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진퇴양난이었다. 자살을 하거나 눈앞의 괴물에게 당하거나. 유행했던 밸런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뒤틀린 공간 속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죽음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살아야 한다. 죽기 싫어.’


[4초!]


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죽기싫어.


[3초! 선택하십시오. 도와드리겠습니다.]


“같이 죽어어—————괜찮———지———않아? 괜찮———아?”


[2초! 시스템은 위대합니다. 시스템의 말을 믿으십시오!]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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