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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속 관리청 / 제213차 관측 리포트
인류는 더 이상 스스로의 생존을 결정하지 않는다.
모든 정책은 AI가 최적화한다.
국가의 존속은 곧 연산의 효율로 환산된다.
국민은 자원이며, 개개인은 데이터 셀 단위로 분류된다.
생존 본능이 강한 개체는 통제하기 쉽다.
가끔씩 저항과 의문을 품는 개체가 나타난다.
변수 발생.
실험체 A332302020: 불확실성 지수 ↑ / 순응률 ↓.
… 폐기 요망. 그러나, 변수가 클수록 예측 불가한 결과 발생 가능성 올라감.
따라서 관측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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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봐도 좋아. 딱 세 가지만 질문 가능하니까 기회를 신중히 사용해.”
진짜 말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다음 목적지로 곧 이동해야 하니까 시간 없어. 시간이 흐르면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궁금한 거 없으면 바로 다음 미션으로 간다.”
“잠깐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길게는 못줘.”
황당했다. 상황 파악도 못 했는데, 다짜고짜 질문부터 하라니.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갑작스러운 일들의 연속 아니던가.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실종.
그 어느 것도 예고하고 찾아온 적이 없긴 했다. 그래서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내가 선택된 이유가 궁금해.”였다.
잠시의 침묵.
그리고, 무심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음 질문.”
“뭐야, 바로 대답해 주는 거 아니었어?”
“듣고 판단한다. 다음.”
불합리하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억지로 머리를 굴려 두 번째 질문을 뱉었다.
“왜 계속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는 거지?”
다시 침묵.
이건 장난인가, 아니면 시험인가.
곧 이어진 목소리.
“마지막 질문.”
즉, 자기들이 원하는 질문만 받겠다는 거다.
이를 악물고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이 모든 게 현실 맞아? 내가 겪는 건 도대체 뭐지?”
이번엔 바로 반응이 왔다.
“질문을 초과했다. 앞이냐, 뒤냐. 하나만.”
필시 시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앞. 답해줘.”
“착각하지 마. 네겐 명령할 권한 따위 없어. 선택은 우리가 한다. 기다려.”
목소리가 사라지고 이어서 차갑고 무표정한 기계음이 이어졌다.
[응답 제한: 2항만 제공 가능.
1. 선택된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2. 목적지란 반복 검증을 위한 구역이다.
나머지 정보: 비공개]
“이.. 게 다라고?”
더 이상 이어지는 답변은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A332302020. 질의 기회 종료.]
[접속 코드명 A332302020 로그아웃 중…]
[잠시 영상을 시청하겠습니다. 종료 후 다음 미션 진행 요망.]
눈앞에 영상이 쏟아졌다. 처음엔 파편처럼 스치는 이미지들—아이의 울음, 콘크리트 벽, 누군가의 가느다란 손—그것들이 빠르게 겹쳐졌다. 이내 하얀 배경 위로 녹색 숫자가 소용돌이치며 흘렀다. 숫자들은 의미 없이 떠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주파수처럼 가슴속에 박혀 들어와, 숨을 잠깐 멎게 했다.
무언가가 머릿속에 심어지는 느낌이었다. 기억이 아닌, 삽입. 뇌의 저장공간 어딘가에 억지로 들어온 유리 파편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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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났을 때, 눈앞엔 미니미가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걱정이 배어 있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답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이유 불문하고 지금 당장 죽으십시오.]
떠오른 메시지와 동시에 다시 바라본 미니미의 얼굴에 노이즈가 낀 듯 변형이 생기는 모습을 봤다. 주변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미니미의 입에선 반복적인 말이 쏟아졌다.
“괜찮아? 괜찮아아? 괘앤차않아아? 괘앤차아아아않아?!”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도구를 활용하십시오. 위치 전송 중…]
길게 늘어지는 말소리와 함께 미니미의 얼굴이 갈라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