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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점빵 Oct 08. 2021

작가 한강에게 감사와 경의를.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지난봄부터 제주 올레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 해를 넘기기 전에 종주를 해보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인데, 지금까지 총 스물여섯 개 코스 중 열일곱 개 구간을 완주했다. 차로 여행했더라면 지나치고 말았을, 아니 이런 곳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제주의 구석구석을 훑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한 근현대사를 건너는 동안 이 섬이 참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는 것이다.


특히 희생자의 수가 무려 삼만에 달한다는 4.3은 내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곳곳에서 그 흔적을 마주하며 내가 여태까지 이 사건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꼈다. 그간의 무지를 반성하고 그저 이국적인 경치의 섬 정도로만 제주를 대했던 것에 사죄하는 심정으로 4.3을 다룬 책을 몇 권 읽기도 했다.


내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기필코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역시 그 지점, 그러니까 제주 4.3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나'인 경하와 친구 인선이 현실과 영적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날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 살아남은 자에게는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또렷이 확인시켜 준다.


무참히 짓밟히고 스러진 가여운 생명들. 그들을 향한 사랑과 애도를 멈추지 않을 것임을, 그리함으로써 결단코 작별하지 않을 것임을 결연하게 선언하는 문장이 읽는 내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 나는 넋을 기리 듯 책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먹먹하다고 해야 할지, 시리다고 해야 할지, 헤아리기 어려운 슬픔이 손끝을 타고 저릿하게 몸 전체로 흘러들었다.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지우고 잊으면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위선의 말이 그 자체로 무자비한 폭력임을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다. 시간이 흘렀다고 소멸할 상처가 아니다. 다만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너무나도 아파서, 그러므로 돌보기가 버거운 까닭에 저리 미뤄둔 것뿐이리라.


한편으로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스스로를 고통의 한가운데로 내몰아야만 가능했을 작업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그 일을 해낸 작가 한강에게 감사와 경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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