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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DDP 뮤지엄 전시 1관

by 상상만두


입구부터 포스가 느껴지네요.

신기한 게 정작 작가는 낙서화가로 유명한데 아주 모던하고 미래적인 환경에서 전시되는 것 자체가

좀 모순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분위기는 압권입니다.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오리지널 작품이 150점이 전시되어 있고 그가 사용했던 노트도 같이 전시되어 생생하게 그의 생애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예술작품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방법적인 입장으로 전시를 감상했는데요

그가 무슨 의미를 고민하고 표현하려 했는지를 기반으로 바라보니 너무나도 다른 관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될수록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JEAN- MICHEL BASQUIAT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바스키아의 작품은 고대 아즈텍, 아프리카, 그리스 로마 예술뿐만 아니라 현대의 만화와 광고 같은 대중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강렬한 시각적 코드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체계를

완성시키고 있음을 체험하였다. 메모를 랩가사나 시로 채운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스키아의 명성은 자자했으나 실제 작품을 이렇게 많이 본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확실히 작은 사이즈로 볼 때와는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메모장 여러 장을 붙여 꼴라주한 느낌의 작품을 큰 사이즈가 아니라 작게 보니 디테일들을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이나 시구 같은 또는 글씨들은 두고두고 기억날 만큼 강력했습니다.


1666000635_A3R_martin.jpg


우유의 의미를 가진 글자 'MILK'는 경우에 따라서는 '백인', 또는 'MLK' (마틴 루터 킹 약자)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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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셀 바스키아에게 왕관 표식이란?

바스키아 작품 속 왕관의 의미는 작품의 카피라이트 표시이며 동시에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미 그리고 자신의 작품 권위를 나 타내는 표현방식입니다.


"예술이란 기억과 생각을 기록하는 표현 방식이라는 관점을 이해하게 만들어준 전시였습니다."




전 이렇게 티켓을 주는 게 좋더라고요. 가끔 디지털로 영수증 출력해 주는 방식은 싫습니다.

이런 식의 아날로그 감성은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해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27년의 짧은 생애동안 현대미술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이티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각을 키워갔습니다.


유년기에는 어머니를 따라 미술관에 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8살 되던 해 큰 사고로 오랫동안 입원 했을 어머니가 건넨 해부학 책〈Gray's Anatomy〉은 그의 예술세계에 평생 영향을 미쳤습니다.





Basquiat-07.jpg Gray's Anatomy 내용을 메모한 바스키아의 수첩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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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ace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는 20세기 후반 뉴욕 미술계의 중심인물이자, 서구 중심의 미술사적 서사를 넘어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예술은 특정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지의 과잉, 언어의 해체, 문화의 혼성이라는 오늘날의 현실을 앞서 예견하며 21세기 예술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바스키아는 음악, 해부학, 스포츠, 만화, 자본, 인종의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작품 속 상징과 시각적 언어로 전환하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왕관, 해골, 해부학 도해 등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문명의 상처와 사회적 경험을 드러내는 근본적인 상징이며, 언어 이전의 질서를 환기하는 원초적 기호로 작동한다. 특히 그가 남긴 아티스트 북은 낙서가 아니라 언어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실험의 공간이었다 파편과 반복 지워짐과 겹침 속에서 기호가 리듬과 감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바스키아의 회화 속 단어와 알파벳은 완결된 문장이 아니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오히려 강한 시각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오늘날 이미지와 정보가 과잉 생산되는 시대에, 바스키아의 언어 실험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무엇을 소통할 수 있으며, 그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바스키아의 예술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다. 그것은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듣고, 보고, 느껴야 하는 언어다.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주요 회화와 드로잉 약 70점, 그리고 그가 8년간 작가의 삶을 사는 동안 직접 기록한 153장으로 이루어진 8권의 아티스트 북을 소개한다. 동시에 반구대 암각화 훈민정음, 추사 김정희의 후기 서체, 백남준 작품 등 한국의 문자, 상징과 연계된 주요 문화유산과 작품을 함께 소개하여, 문자와 이미지가 가지는 동서양 보편적 미학이 교차하는 장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바스키아가 추구한 총체적 언어인 시, 문자, 이미지, 기호, 리듬의 결합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동시에 바스키아의 기호 체계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시각적 해석을 통해 예술 언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Studio of the Street


1983년 헨리 겔드 잘러와의 인터뷰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는 자신의 주제를 "왕족, 영웅주의, 그리고 거리"라고 답했다. 이 세 단어는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를 함축한다. 바스키아의 작업은 1980년대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거칠고 날것의 현실에 뿌리내렸으며, 뉴욕의 에너지를 캔버스로 옮겼다. 그의 초기 회화에는 경제 위기, 범죄율 급등, 사회 불안으로 뒤섞인 당시 뉴욕의 생동감이 담겨 있다.


그는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SAMOC'라는 가명을 사용해 그라피티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며 사회적 비판을 담아냈다. 1978년 12월 11일 <빌리지 보이스》 인터뷰 이후 두 사람은 입장 차이로 인해 공동 작업을 종료했으며, 이후 거리에는 "SAMOG IS DEAD"라는 슬로건이 남겨졌다.


이후 바스키아는 엽서, 콜라주, 티셔츠뿐 아니라 냉장고, TV, 거울, 버려진 창문과 같은 일상적 오브제에 그림을 그리며 전통적 매체의 경계를 확장했다. 그의 초기 회화는 그라피티처럼 역동적이고 즉흥적인 선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화면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버려진 일상적인 재료들은 바스키아에 의해 예술작품이 되었고, 1980년대 뉴욕 거리의 활기와 생생한 에너지는 그의 작품 속에 남아 그의 시각적 언어와 예술적 실천의 출발점이 되었다.



무제 Untitled, 1982, Oil, spray-paint, oilstick and collage on found window, two-sided, 94.5 ×88 ×4.5cm,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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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협업, 무제(교향곡 No. 1), Mixed media, spray-paint and paper on plywood, 122.6x219.7cm, Collection of Larry Warsh



무제(자동차 충돌), 1980, Acrylic and oilstick on canvas mounted on wood supports

109 ×180.5cm, Private Collection


작품 개요

제목: 무제 (자동차 충돌, Untitled (Car Crash))

제작 시기: 1980년대 초반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960–1988)

매체: 아크릴, 오일스틱, 혼합재료 (캔버스 또는 목판 위)

주제: 자동차 충돌 장면을 중심으로 한 폭력과 죽음의 이미지



1️⃣ 시대적 맥락

1980년대 뉴욕은 범죄, 약물, 인종 문제, 미디어 자극이 뒤섞인 도시였다.

바스키아는 거리 낙서(SAMO) 출신으로, 당시 도시의 사회적 불안과 흑인 젊은 세대의 현실을 예술로 표출했다.

“자동차 충돌”은 당시 미디어가 소비하던 폭력적 이미지(범죄, 뉴스, 사고 장면 등)를 상징하며,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의 초상을 의미한다.



2️⃣ 주요 시각 요소 해석


시각 요소 의미 및 상징


자동차와 인체의 파편화된 이미지 충돌의 순간을 정지된 채로 보여주며, 생명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지는 폭력성을 드러냄


해부학적 도상 (두개골, 뼈, 장기 등) 죽음의 직접적인 은유. 바스키아가 자주 그린 ‘두개골’은

생명력과 소멸의 공존을 상징


낙서 같은 문자 (단어, 숫자, 기호) 사고와 관련된 단편적 정보나 감정의 폭발을 암시. 신문

헤드라인처럼 의미가 조각남


강렬한 원색 대비 (빨강, 검정, 노랑) 생과 사, 경고, 폭력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극대화


분절된 구성 사고의 충격 순간처럼 질서 없는 시각적 파편 —

“현대인의 단절된 의식”을 반영




3️⃣ 주제적 해석


죽음과 미디어

바스키아는 죽음을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자동차 충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 재현된 폭력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인종과 사회

흑인 예술가로서 바스키아는 “피해자이면서도 관찰자”의 시선을 가졌다.

사고 속 인물의 신체가 익명화되어 있는 것은, 사회가 흑인의 죽음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소비하는지를 비유한다.


예술사적 연관

앤디 워홀의 「Death and Disaster」 시리즈처럼, ‘자동차 사고’를 통한 죽음의 미학화라는 공통된 주제를 잇는다.

그러나 워홀이 냉정한 복제와 반복을 통해 거리감을 표현했다면, 바스키아는 감정적 폭발과 원초적 표현으로 그 주제를 되살렸다.



4️⃣ 전체 해석 요약


「무제 (자동차 충돌)」은 단순한 사고 장면이 아니라, 죽음과 폭력의 이미지가 일상이 된 현대 사회의

초상이다.


바스키아는 파편화된 형상과 격렬한 색채, 낙서적 언어를 통해 도시의 혼란, 흑인 청년의 정체성, 미디어의

잔혹성을 동시에 폭로한다.


결국 이 작품은 ‘죽음의 이미지가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며, 바스키아 자신의 내면적

불안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응축된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중요한 작품이라서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서 정리해 둡니다.

물론 작품에 이렇게까지 의미를 두어야 하나 싶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참조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절대 맹신은 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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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4 Number 4, 1981, Acrylick, colored oil sticks and colored xerox collage on canvas

167 ×137cm, Collection of Andre Sak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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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등의 협업, 무제(재미있는 냉장고), 1982, Acrylic, spray-paint and marker

143.5 ×61 ×64.8cm, Collection of Larry W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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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5 프레디. 푸투라. 에릭 해. 엘에이 II. 체나브 광 치, 케니 샤프 등의 협업

화병 Vase, 1982, Mixed media, synthetic polymer paint, spray-paint, and fibre-tipped pen on, fiberglass, 61 ×50.8cm, Collection of Larry Warsh




무제(기차, 자동차, 배), 1981, Ink on Paper, 71.12x116.84cm, Collection of Larry Warsh





뉴욕, 1981, Acrylic, oilstick, spray paint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28.4x226.2cm, Private Collection





무제(유명한 야구 선수의 초상화), 1981, Acrylic, oilstick and Xerox collage on canvas

127.3 ×110.5cm, Private Collection








Phooey & Fun Gallery


1982년 늦여름과 가을에 들어서면서, 바스키아는 캔버스의 물질성 자체를 탐구하며 점점 더 전통적인 캔버스의 틀을 넘어섰다. 크로스비 스트리트의 스튜디오와 같은 해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편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그는 캔버스를 나무 기둥, 판자, 팔레트에 직접 늘여 붙이고, 못으로 고정하거나 새끼줄로 묶었다. 그 위에 회화 드로잉, 콜라주 된 종이를 겹겹이 쌓으며, 다양한 의미의 층위가 배어 있는 역동적이고 불규칙한 표면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예가 고치 시립미술관에 소장된 <푸이(Phooey)>이다. 바스키아는 작품 속에 APANESE LOUDSPEAKER라는 문구를 새겨 넣으며 일본의 경제적 기술적 영향력을 자신의 "자식의 공간' 안에 담아냈다






전사, 1982 Oilstich on Paper 63.5 ×76.2Cm Collection Kyako Tamura






작가 미상, 최영 장군, 연도 미상, 종이에 채색, 93x67cm, 가희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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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잉크 드로잉 1/7), 1981, Ink on paper, 30.5 ×22.9cm, Collection of Larry W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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