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키울 때는 만날 수 없는 세상
어린아이의 재롱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순수함, 싱그러움, 귀여움 등등 여러 가지다. 요즘 우리 집 둘째 아이 덕분에 유독 자주 느낀다. 집안 곳곳의 한글을 제 힘으로 읽기 시작하고, 유튜브에서 배운 말투를 곧잘 따라 하며, 형과 온몸을 부대끼며 장난치기 좋아하는 6살 남자아이다. 어찌나 자기주장이 강한지, 원하는 것을 바로 안 해주면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바로 해달라고 재촉한다. 나도 종종 부모 이기는 자녀일 때가 있었는데, 내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아이에게 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사실 아이가 지금보다 어릴 때는 힘든 날이 더 많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챙겨야 하는 어린 시절이었다. 큰 아이는 5살, 작은 아이는 3살 무렵이 절정이었다. 첫째도 어린데 둘째는 더 어리니, 놀이터를 가면 딱 붙어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그 당시 놀이터에서 7살, 5살 남자 형제를 보게 됐는데 형이 동생을 이끌고, 동생이 형을 따르는 모습이 신기했다. 마침 그 아이들의 엄마가 있어 물어보니 '이제야 둘이 알아서 논다'며 '조금만 견디면(?!) 된다'라고 나와 아내를 격려했다. 그 이후 2년을 어떻게 보내나 싶었는데 어느새 지나갔다.
둘째 아이가 갓난아이일 때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엄마와 한창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큰 아이는 엄마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 와중에 외계 생명체가 엄마 품을 빼앗으니 질투가 적지 않았다. 두 아이의 사정에 맞춰 번갈아 팔로 안으며, 놀아주고 들어주고 먹이다 보면 팔목이 금세 시큰거렸다. 큰 녀석은 밥을 먹고, 작은 녀석은 이유식을 시작하니 먹고 치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잠자는 습관이 다른 두 아이가 비슷하게 잠들도록 책을 읽어주다 내가 먼저 잠들곤 했다. 정말 첫째만 있을 때보다 제곱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보니 둘째 아이가 없는 세상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되었던 무대의 주인공이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어린이집에 간다고 했을 때 감개무량했다. 부모 사정에 따라 한 달만에 적응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도 잘 다녀줘서 기특했다. 그 뒤로는 첫째를 키우며 한번 해봤던 일이라 별로 헤매지 않았다. 매사에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유독 둘째 아이는 소소한 사고를 더러 겪었다. 바로 앞에 있던 아빠가 넋을 놓고 있다가 아이 손가락이 문 틈에 낀 적도 있었다. 그때 우는 아이를 안고 뛰었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올해 들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큰일을 겪었다. 지난 3월에 전신마취하는 수술을 했다. 진주종이라는 종양이 생긴 탓이다. 작년 이맘때, 중이염이 두 달 가까이 낫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고막 안쪽에 진주종이 있어 그랬다. 대형병원에서 고막 고름을 없애고, 이후 또 병원을 옮겨 7개월 여만에 수술했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너무 안쪽까지 퍼져 있어 위험할 수 있었다. 재수술 가능성이 매우 높다던 수술은 감사하게도 한 번에 완벽하게 됐다. 아이도 건강을 회복했다. 수술 후 4개월 뒤인 최근에 완전히 잘 치료됐다는 최종 결과를 받았다.
둘째를 볼 때마다 아이와 함께 한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부모도 겪지 않은 여러 일을 거쳐 측은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갈수록 짓궂어져 얄미울 때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 웃고 울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를 낳고 키운 후부터 계획하지 않은 일을 참 많이 겪었다. 그 때문에 삶이 미처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기분일지라도 요즘은 기꺼이 가게 된다. 아이들과 하게 될 남다른 경험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껏 그래 왔듯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분명 바라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을 시간일 것이다.
20대 한창때에는
바라는 대로 살고 싶어
몸부림쳤습니다.
부모가 된 지금은
바라지 않았던 미래가
때로는 더 고귀한 것을
하나씩 배워갑니다.
이게 사는 맛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