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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pr 16. 2020

옳은 것과 좋은 것 사이에 타협하는 방법

무엇이 가장 정직하게 일하는 방법일까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떳떳하지 못한 요구를 받는 경우가 있다. 지난 직장에서 겪었던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한 번은 군대에서 전화를 받았다.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데 구매하기 위해 거래내역서에 표기되는 항목을 바꿔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현재 고객이 쓸 수 있는 예산이 기존에 갖고 있던 제품을 수리하는 용도로만 쓸 수 있게 돼 있었는데, 마침 우리 회사 제품이 호환이 되는 터라 교체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증빙서류로 제출해야 할 내역서에 구매한 것이 아닌 기존 제품을 수리한 비용으로 쓴 것처럼 써달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어떤 업체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 회사 제품을 함께 끼워서 또 다른 고객에게 견적을 주고자 하는데, 그 고객의 요청으로 가격을 좀 더 비싸게 받은 것으로 서류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실제 구매는 인터넷 가격으로 하지만 제출하는 서류는 구매한 가격의 2배 정도 수준으로 산 것으로 공식 서류를 만들어 함께 배송해달라는 얘기였다. 둘 모두 우리 회사가 서류를 사실과 다르게 꾸며달라는 요청이었다. 난 첫 번째는 요청을 들어주었고, 두 번째는 거절했다. 구매한 목적은 고객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가격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회사를 대표해 일하는 입장에서 내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었다. 거래내역에 표기된 가격은 거래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숫자이므로 바꾸지 않기로 했다. 다만 구매하는 고객이 그 돈을 지불할 때 표시할 목적은 상황에 따라 바꿔줄 수 있다고 정했다. 고객이 나쁜 짓을 한다고 명시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닌 이상 거절할 명분이 많지 않기도 했다. 고객이 말한 목적과 다른 의도로 바꿔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내가 그 의도를 일일이 심사해서 판매 여부를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구매를 위한 의도면 가급적 돕기로 한 셈이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내가 갖고 있는 정직의 기준에 맞지 않았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 정직을 가르칠 때 거짓 없고 꾸밈없이, 바르고 곧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친다. 아이에게 상황에 맞춰 정직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을 듯했다. 정직하지 않는 경우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면, 정직을 배울 시간에 협잡을 배우는 것이 더 이롭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정직한 사람이 더 잘 될 것이라 믿고, 그런 사람이 더 많아져야 사회가 살기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 때문에 내가 만난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해야 했다.


난 이때 '정직의 상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일을 하며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정직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유로 내 기준이 상대방보다 더 엄격할 수 있다. 정직한 것이라 생각하는 항목이 다르거나 좀 더 많은 경우다. 내가 겪었던 것처럼 무언가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것이 변조인지 부탁인지 판가름하는 것은 이것을 누구의 기준으로 보는지에 달렸다. 나는 여기서 타협하지 않을 선을 임의로 정했다. 내역서에서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기존 서류 외에 다른 서류를 건 별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먼저 내 정직의 기준을 정한 후 타협의 선을 정한다. 난 이것을 '구매 의도'로 봤다. 상대방이 사는 이유를 우리 회사 서류에 넣어주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면, 내 정직의 기준과 다를 지라도 이해하기로 했다. 만약 고객이 회사를 속인다면 사실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준을 양보한 의도가 좋은 방향이라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 봤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융통성은 매번 고민거리다. 내가 가치를 지키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 이 가치를 지켜달라 말할 수 있을까 싶은 탓이다.


타협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게 양보할 방법을 늘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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