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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15. 2020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면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찾아

어렸을 적부터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한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꾸준함이다. 한 가지를 부지런히 하여 인정받는 친구가 늘 부러웠다. 이를테면 또래 아이들과 축구팀을 짤 때 그랬다. 게임에 앞서 공격, 허리, 수비, 골키퍼 등 주요 위치를 누가 담당할지 정해야 했다. 그러면 '저 포지션은 그 친구가 해야 돼'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골키퍼만 하던 친구는 늘 골대가 자기 몫이었다. 선수용 장갑도 갖고 있고, 당시 인기 있던 김병지 선수의 헤어 스타일도 흉내 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반면 나는 여기저기 가리는 곳이 없었다.


하나를 계속하고 있으면 어느새 몸이 근질거려 참지 못했다. 남들보다 적응이 빨라서 하고 있는 것에 금방 익숙해졌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필 여유도 금세 생겼다. 하나를 꾸준히 해야지 싶다가도 더 좋고 재밌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대번에 거기로 몸이 옮겨졌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면 못내 아쉬운 감이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은데 막상 보면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 하나를 제대로 못한 듯한 기분 때문이다. 진로 고민이 많았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이런 걱정이 더 깊었다. 나름대로 방향을 잡고 인생 사시는 분들을 동경했다.


세상에는 자신의 가치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많았다. 2년간 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일을 하며 느낀 점이다. 평소에 잘 몰랐던 문제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분이 많았다. 특정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치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시는 분들이었다. 예를 들어 황폐해지는 환경을 보호하고 가꾸는 일, 사교육으로 왜곡되고 악화되는 교육 환경을 바꾸는 일,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일, 학교에 부적응해 이탈한 청소년을 돌보는 일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어떤 이유로든 그 일에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쓰고 있었다.


그들처럼 어떤 가치에 집중하며 살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들의 일은 제각기 중요해 보였지만 내 일 같지 않았다.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의도만 공감될 뿐이었다. 그것에 에너지를 들일만큼 개인적인 동기가 솟구치지 않았다. 그런 일을 알기 전에는 가치 있는 일을 멋있고 흥미 있는 일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내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가 가치보다 더 중요했다. 누군가는 열심히 자신의 인생 트랙을 달려가는데, 같이 있는 나는 조금 달리다 말고 '이게 맞나' 하는 생각에 빠졌다. 하나에 꾸준하지 못한 내성이라도 생긴 듯했다.


좋고 옳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꼭 내가 하길 원하는 일이다. 이 물음의 과정은 한 때 경쟁률이 높은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수험자가 면접관들 앞에 있었다. 물음은 '왜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뽑혀야 하는지'였다. 나를 뽑아달라고 하면 이기적으로 보이고 남을 뽑아달라고 하면 간절함이 없다고 보니 어떤 대답이든 곤란했다. 경쟁을 부추기는 나쁜 질문인데 당시에는 그 내용에 메어 속을 끓였다. 그냥 꼭 하고 싶은 개인적인 이유만 분명히 말하면 충분했었다.


내가  일은 나만의 가치에 달려 있었다. 그 가치가 정리된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다른 사람의 확인이나 지원이 필요치 않았다. 그냥 그것이 좋고 내가 가야 할 길 같다고 전심으로 긍정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 안에는 내가 오래 고민한 키워드와 가슴에 자주 새겼던 문장이 있었다. 그 덕분에 열정과 힘을 얻었고 그로 인한 선택들에 후회가 없었다. 이것을 확신하지 못해 보냈던 시간은 이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나만의 경험과 고민이 꽃처럼 핀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미 내 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냥 제 자신에 충실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살다 보니
꾸준히 제 길을 걷고 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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