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추억을 쌓아가며
오랜만에 롤러코스터에 오르면 꽤 긴장된다. 앞서 길게 줄 선 사람들 뒤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다 겨우 탔는데 괜히 울렁거리는 마음에 괜히 탔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내 옆 자리에 첫째 아이가 앉는다. 입으로는 '아 무서울 것 같아, 어떡하지'라면서 얼굴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다.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속 없는 말을 건넸다. '정말 괜찮겠어? 무서우면 내릴까?', '괜찮아 아빠'. 아이 핑계로 내려볼까 했는데, 안전장치를 붙들며 꼭 타겠다는 아들이 있으니 꼼짝 못 하고 탈 수밖에 없다. 그 직후 놀이기구는 체감상 2분여 만에 끝났다.
그런데 아이가 스릴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렇게 힘겨운데 대체 왜 타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출구를 나서는데 아들이 저만치 앞으로 뛰어가 나를 불렀다. 또 타자고. 엄마와 동생은 다른 곳에 있고, 당장 아빠 없이는 탈 수 없으니 꼭 같이 가야 했다. 그렇게 연거푸 4번을 타고 나서야 아이를 설득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놀이공원에 입장하자마자 어른 바이킹부터 타겠다고 했을 때부터 왠지 불안했다. 이전에 이모와 따로 몇 번 놀러 가더니 완전히 적응한 듯했다. 무서워할까 봐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는데 내리면서 시시하다는 말에 '깜놀'했다.
아이가 부쩍 자란 듯 느껴졌다. 아들은 밤늦은 폐장 시간까지 씩씩하게 놀았다. 그 옆에 지쳐있는 나를 보며 괜히 나이 먹은 듯한 기분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XX랜드, OO월드 이름을 보며 설렌 것은 10년이 훌쩍 지난 옛날이었다. 같이 있어 행복했지만 예전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가 함께 하자고 하면 기꺼이 따라나설 수 있는 건강과 젊음이 있어 감사할 뿐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런 순간조차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다. 꼭 옆에 타 달라고 조르고, 아빠가 함께 있어 재밌어하고, 맛있는 것 사달라고 하는 것도 분명 한 때였다.
사실 아이는 귀찮을 정도로 조르는 일이 많았다. 아빠가 자주 필요했다. 책을 읽어주고, 카드게임과 윷놀이를 함께 하고, 레고로 멋진 작품을 만들고,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씻겨주고, 옷도 갈아 입혀주고... 등등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수고스럽게 느껴질 때가 더러 있었다. 아이를 재우면 그제야 집안일 하고, 씻고, 자기 전에 확인할 일을 보다가 까무룩 잠드는 일이 많았다. 내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싶은 청청한 나이인데 아이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몰입하다 슬금슬금 햇수가 쌓여갔다. 한창 힘든 때를 지난 요즘에야 이 시간을 돌아본다.
문득 이 쉽지 않았던 일상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육아가 삶의 의미로 다가올 무렵부터다. 아이의 필요를 채우면서 삶의 가치를 나눠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고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를 통해서 이런 본능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내 부모가 생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셨듯, 내가 아이에게 그런 거름진 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가 자라고 커왔던 지난 세월이 거저 주어진 것처럼 아이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든히 차올랐다.
아빠 노릇을 한다고 갑자기 자란 것은 분명 아니었다.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힘들다고 누가 왜 말해주지 않았나'라며 푸념했던 적도 솔직히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고, 그것을 아이가 누릴 수 있다면 그 사이 좀 변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받기만 하던 사람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한 셈이다. 남에게 줄 것이 있는 마음으로 살기에 좀 더 풍요롭게 살게 됐다고 감히 써보게 된다. 나만 위해 살던 것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재미있다. 기왕이면 아이와 함께 이 마음으로 나이 먹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늘을 만들 정도로 이파리가 있고
철 따라 먹을 만한 열매가 맺히며
기댈 만큼 든든하게 대가 서 있는
그런 나무처럼 늙을 수 있다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