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사로부터 배운 것들
모든 상사에게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물론 모든 점을 배우고 싶지 않을 때가 적잖게 있었다. 그럼에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대부분 좋은 추억과 교훈이 남았다. 그간 사회생활에서 만났던 상사 중 특히 마음에 남았던 몇 분을 공유해보려 한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기억에 또렷이 남은 것은 나의 일상에 새로운 인상을 주셨던 덕분이다. 젊고 활기차며 기운이 넘치는 나 같은 사람의 윗분으로 계셨던 분들은 사실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이 있는 성격의 나와 공감하며 일해주신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있다.
나이가 두 살 많았던 한 팀장님께는 유머를 배웠다. 호탕한 웃음이 특징이던 그분은 특유의 웃음소리로 주변을 즐겁게 만들었다. 남다른 말투와 재치가 재밌었고 덕분에 일할 때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회의를 하거나 무언가를 지적할 때는 웃음기를 지우고 정확하고 꼼꼼하게 짚으셨다. 특히 이 분께 고마웠던 점은 팀장의 상사로부터 들은 얘기를 적절히 소화해서 전달했던 점이다. 압박이 있고 싫은 소리를 들었다 할지라도 부드러운 말투로 바꿔 차분히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팀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영화배우와 이름이 같았던 한 상사께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배웠다. 캘린더와 메일 등 스마트워크 도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성향으로는 얼굴을 보거나 문서를 주고받으며 일하는 것이 편했는데, 이보다 더 능동적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소위 IT 도구를 이용해 원격 업무를 하면서, 하면 할수록 업무적인 믿음이 중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업무 방식을 배운 것 이상으로 이분이 나를 진정으로 신뢰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덕분에 성과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 차이가 좀 있었던 40대 부장님께는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 배웠다. 이분은 전형적인 영업맨이셨는데 전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들으면 감탄사가 나왔다. 여러 관계사 담당자들과 호형호제하며 환담을 나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까부는 동생처럼 이야기하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10년 지기 친구처럼 허물없이 말했다. 그러다가 통화가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업무에 몰입하셨다. 마치 연기를 하듯 상대방에 맞춰 자신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부드럽고 유연하면서 자신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가는 모습을 마음에 담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랫동안 모셨던 사장님께 마음을 얻는 말에 대해 배웠다. 20대 후반 가슴이 펄펄 끓던 시절 이 분과 함께 토론하면서 조직 내부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나 같으면 화나서 되받아칠만한 순간이었는데 그분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흘려버리셨다. 나이 어린 사람의 비판일지라도 겸허히 수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말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스스로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 목표와 목적을 끝까지 제시하는 모습은 리더로서 체득하고 싶은 바였다. 그분 곁에 오래 있으면서 적절한 말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여러 상사를 통해 배운 점은 달랐지만 나를 대하는 진심만큼은 같았다. 모두 나를 아껴주셨던 분들이었다. 인연에 따라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가까이 뵀지만 나를 대했던 태도 덕분에 이 분들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갖고 있다.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기능적이거나 도구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다. 담백하고 순수한 뜻으로 말하고 들으며, 돕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도 나를 통해 뭔가를 배우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배우기만 하던 제가
누군가에게 배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