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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26. 2020

지금 혼자서 잘하고 있다면 멈춰라

우월하고 싶은 욕심 죽이기

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마치 담배처럼 시나브로 잠식하는 병인이 있게 마련이다. 평소에는 몰랐다가 어떤 계기로 발견하면 이미 몸에 크고 작은 문제가 남은 뒤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내게는 해로운 자존심이 있었다. 남들보다 우월해지고픈 마음이다. 이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를 겪고는 한참 뒤에야 이것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내 사무용 컴퓨터다. 회사에서 가장 좋은 PC였다. 성능, 속도, 용량 모두 다른 직원보다 두세 배 이상 좋았다. 고사양 작업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싶었다. 컴퓨터가 후지면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있었다. 물론 일을 잘하기 위해 좋은 연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을 위해 도구를 맞춘 것이 아니라, 도구를 먼저 찾고 그에 걸맞게 일하겠다는 마음이 문제였다. 나 중심적인 생각이 동기였기 때문이다. 후자의 나는 일을 할 때 스스로 짐을 만들어지고 있었다. 일에 필요한 준비가 내 기준에 맞춰 충분하지 않으면 몰입하지 못했다. 마치 자기 고향에서만 신기록을 내는 선수처럼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예민함이 있었다.


이는 내가 하면 무엇이든 잘 해낼 것이란 기대로 변질됐다. 겉보기와 달리 속에 독이 있었다. 내가 잘하도록 남을 동원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있었던 탓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인사권까지 행사하는 부장급 직위로 발탁돼 일하면서 그 폐단을 겪었다. 당시 적지에 침투하는 특수 요원 같은 결기가 있었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아 정체된 본사 조직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이 있어서였다. 내가 팀장으로 수혈되어 조직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체질이 개선되길 기대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기기도 했다.


혼자서 잘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불협화음이 생겼다. 기존 사람들과 잘 융화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본사에 출근하자마자 기존에 있던 출고장 레이아웃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마치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기 전에 청소하고 정리하듯, 팀원이 없는 상황에서 혼자 프레임을 해체하고 옮기고 조립하며 공간을 다시 정리했다. 나름대로 고민해 자발적으로 야근까지 하면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전에 그 공간을 기획했던 사람의 의도는 생각지 않았다. 얼마 뒤 전 담당자가 협의 없이 바꾼 것에 아쉬움을 토로할 때 텃세를 부린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맡은 일만 잘하려는 마음이 너무 컸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과 타협하기보다 내 일을 변호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함께 부딪히며 일해야 할 사람들의 생각은 충분히 들어보지 못한 채 기존의 방식을 바꾸려는 내 의견만 정당화하기 바빴다. 뭔가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가졌던 걸까. 일 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못했다. 동료들의 안부를 묻고 필요를 아는 일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솔직히 조직보다 나를 위해서 일했던 것 같다. 일 잘하는 거물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톺아보면 사실 나 혼자서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을 때만 의도한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남을 어떻게 도울지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것이 깜냥의 한계였다. 회의 시간에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들으며 마음 쓰지 못했던 것은 리더로서 도량이 좁았던 모습이었다. 결국 타인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없다면 내 한계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평소에 영향을 받기보다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실천하려면 타인을 어떻게 도울지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만약 혼자 분주하다면 잠시 멈출 때겠다.


저만 혼자 바쁘다고 느낄 때
남이 아니라
제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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