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프로필 부분에 나에 대한 소개 문구를 이렇게 적어 넣었다.
'책, 커피, 그림, 여행, 자연을 좋아합니다.'
책, 커피까지 쓰던 나는 문득 '커피'를 좋아한다고 써도 될까? 하는 생각과 함께 주저하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가게를 찾아다니긴 하지만 매니악하지는 않지 않나? 감각적인 카페를 좋아하는데, 그럼 카페를 좋아한다고 적어야 하지 않나? 원두에 대해 딱히 잘 알지도 못하는데 '좋아한다'면 '전 에티오피아를 가장 좋아해요, 이유는... 아로마는...바디감은...산지는...' 그렇게 주절주절 말할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에 캡슐 커피 머신이나 모카포트, 또는 핸드드립을 위한 기구들을 착착 갖춰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내가 커피를 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나? 떠올려보니 나는 이런 이런 이유들로 '커피'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모닝커피를 즐기고,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신다. (즉, 커피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맛있는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와 브랜드를 찾아다닌다.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원두를 (대충 감으로 때려서) 선택하고, 커피의 맛을 음미한다.
커피를 마시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고, 경험하고자 한다.
맥심 블랙커피도 잘 마시지만, 때때론 핸드 드립으로 추출해서 커피를 마신다.(딱히 섬세하진 않지만!)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때로는 기분이 좋아진다.
소개팅 남과의 대화를 할 때도 생각난다. 연주음악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분이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좋아해요.”하길래, “저도요, 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뭐라고 하는 노래를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는데, 그분이 “에너지 플로우(energy flow)는 어때요?” 하고 되물어 왔다.
내가 “에너지 플로우요? 아 모르는 음악 같은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사이, 그가 음악을 재생시켰는데 평소에 잘 듣는 음악이었다. 그제야 “아, 아는 곡이네요.”하고 재빨리 답했는데, 어쩐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좋아한다' 말하는 아티스트의 얼굴을 모르기도 하고(곡이 좋아도 얼굴에 관심이 없음), 좋아하는 곡의 곡명을 모르기도 하는 사람인 것이다.(귀로 듣고 좋으면 하트를 눌러 앨범에 저장했다가, 습관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누르기 때문) 그런데 "**아티스트를 좋아해요."하고 대답한 뒤 곡명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니 '음악을 좋아한다.'는 내 말이 어쩐지 거짓말(?)처럼 들렸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좋아한다.'라고 말하려면 그 대상에 대해 정말 정보를 줄줄이 꾀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문득 내가 '**을 좋아한다.'는 말에 꽤 높은 기준을 두고 나 스스로를 검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높은 기준의 뒷 면에는 '덕질 문화'를 칭찬하는 분위기와, '이 정도는 해야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던 헤드헌터나 커리어 코치들의 코멘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덕질의 경우 그 대상을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해 봤다!'하고 뽐내는 문화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좋아하는 대상을 디깅 하고, 누구보다 그 대상과 세계를 깊이 파헤치는 사람이 어쩐지 위너(?)가 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헤드헌터에게는 "구직 시 이 분야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냥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잘 알고 있어야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때문에 내 LIKE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높아진 기준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면 아닌 것 같다. 딥 다이브를 하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그냥 좋아'하는 느낌으로써의 좋음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고, 그 '가벼운 좋음'도 긍정할 수 있고, 가벼운 상태가 유지되어야 언젠가 디깅의 세계로 빠지게도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복잡한 생각 끝에(사실은 보다 심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라고 써넣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음미하는 정도로, 좋은 향을 맡고 한 모금 음미하며 기쁨을 찾는 대상으로써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 맞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아... 정말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