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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계절의 맛

스물세 번째 쓰기

by 박고래

며칠 전 ‘생죽순’ 쇼핑을 자랑하는 글을 썼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퇴근길 마트에 들른 나는

마법사의 주문 같은 외침에 다시 한번 충동구매를 시전 했다.


“초당옥수수- 초당옥수수가 한 팩에 오천 원!”


정가가 8천 원쯤 했던 것 같은데, 마감 세일이었는지 마트 종업원 분이 정말 귀신같이

나의 계산 순서가 돌아왔을 때, 저 멘트를 외쳐버린 것이다. 계산대의 점원이 바코드로 손을 가져가는 찰나에

나는 ‘옥수수 하나 가져올게요!’하고 양해를 구한 뒤 쏜살같이 옥수수 매대로 가

‘떨이 5,000원’의 바코드를 덧바른 초당 옥수수를 집어들었다.


주중은 회사에 가야 하니 먹는 속도도 느린데, 또 오래 저장할 수 없는 식재료를 구매해 버린 것이다.

때로는 내 소비습관이 ‘왜 이런가?’하고 한탄하는데, 그럼에도 제철에 아주 잠깐 만나는 과일, 야채 등은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내가 싸 간 샐러드 속 옥수수가 통조림 옥수수가 아니라

초당 옥수수라고 이야기했더니, 맞은편에 앉은 동료가 이 주제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역시 제철 음식은 그냥 못지나치죠!’하고.


그렇게 시작된 우리는, 지난봄부터 뭘 놓쳤고, 뭘 놓치지 않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늘어놓았다.


“저는 봄이 되면 두릅을 꼭 먹어야 해요, 그런데 올해는 고향에 못 가서 놓쳐버렸지 뭐예요… 엄마표 두릅요리가 좋은데…”

“아-저는 쑥버무리요! 봄에는 꼭 집에서 쑥 가득하게 넣고 찜기에 쪄 만드는 쑥버무리를 먹어야 봄 같아요.”


나도 질세라 지난봄, 대저 토마토 한 박스를 충동구매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저 토마토는 봄철만 잠깐 먹을 수 있는

계절 과일이다. 붉은색보다는 초록색 면이 비교적 많은 단단한 과육 모습과는 달리 한 입 베어 물면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좋다.

이 토마토는 부산 ‘대저동’ 일대에서 3~5월 사이만 재배되는데, 이 지역이 일교차가 크고 낙동강 하구라 토양이 비옥해서 겉단속촉달달의 산미가 좋은 토마토가 재배된다고 한다.


이렇게 독특한 맛을 내지만, 슬프게도 넉넉한 양을 사서, 오래 두면 금방 과육이 붉어지면서 그 특유의 탱글함이 사라지고 완숙 토마토와 비슷한 맛과 흐느적거림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대저 토마토는 적당한 양을 사서, 금방 먹어 치워야 한다. 올해도 나는 이 토마토로 가는 봄의 끝자락을 느껴보고자 한아름 샀다가 마지막 한 두 개는 완숙의 토마토를 먹어야 했다.


그런데 또! 초여름이라며, 초당 옥수수를 세 개나 사버린 것이다. 초당 옥수수 역시 한시적 계절에만 먹을 수 있고, 오래 저장하면 그 맛이 변해버려 구매하면 금방 먹어야 한다.

나는 이미, 집에 포도며 당근이며, 샐러드를 위한 야채도 잔뜩 사둔 상태였는데- 계획도 없이 주중에 초당 옥수수를 사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알알이 옥수수를 분리해 샐러드 속에 넣어간

것이었다. 알을 하나하나 해체하며, 식(먹을 식)에 대한 내 집착이 너무 심한 건가? 하고 생각해 봤는데, 알고 보니 그건 ‘맛’ 그 자체에 대한 집착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오늘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새로운 게 좋아요.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이 너무 좋아요. 너무 한시적이라, 작년에 먹은 초당 옥수수 맛은 기억도 안나거든요.

짧은 기간 동안 한두 번 먹고 나면, 그다음 해에는 그 맛이 기억나지 않아요 ‘새로운 경험’이 되는 거예요. 식자재로 계절을 느끼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측면에서 계절에 맞는 식자재, 특히 기간이 정해진 과일, 야채를 먹어보는 게 너무 즐거워요.”


그렇다. 나는 ‘맛도 맛’이지만, 계절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 한정판 식자재들이 나오면

그걸 맛봄으로써 ‘봄’이라는 수집할 수 없고, 금방 지나가는 가치들을 물리적 요소로 치환해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싶은 것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앞으로 60년쯤 더 산다면, 내 인생에 봄은 60번이 남았다고.

60번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적은 횟수라, 매 년 돌아오는 봄이 너무 귀하고 아깝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절로 ‘삶의 유한성’까지 생각이 뻗는데,

그 때문인지 ‘매 계절을 최선을 다해 즐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즐김’의 도구 중 하나가 맛있고 건강한 ‘식재료’가 되는 걸 한탄할 필요는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올해는 대저 토마토를 부모님께도 한 박스 보내드렸다. 내가 봄을 만끽하는 방식을 부모님과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느끼는 “계절 식자재”를 통해

나보다 만날 수 있는 봄이(나이로만 따지면) 적게 남은 나의 부모님이, 올해의 봄을 더 깊이 있게 만나셨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글을 쓰며 낸 결론인데, 역시 나는 그게 남도 꽃 놀이던, 계절 식자재든 간에

오는 계절을 마음껏 환영하고 누리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누려도 100번이 안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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