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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May 17. 2021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말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 생각난 관계 속의 '나쁜 태도'에 대해

출퇴근 길에 읽고 있던 책의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많은 이들이  글을 읽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문단을 발췌해 적어본다.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울리고 싶어 한다. 어린이가 우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그럴 것이다. 그저 장난으로, 어린이의 오해를 유도해서 울게 만든다. 그 우는 모습을 '반응'이라고 여기며 즐거워한다. 잠깐이니까, 울고 나서 달래면 되니까. 정말로 큰일은 아니니까.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이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이를 울릴 수도, 울음을 그치게 할 수도 있다고.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오해다.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김소영 지음]


나는 '반응이 좋아' 놀려먹기 좋은 동생이며 친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래?' 하면 돌아오는 지인들(또는 당사자들)의 답은 '네 반응이 재미있으니까!'였다. 만약 내 '반응'을 기대하며 은근한 말투로 나를 놀려먹던 사람에게 내가 정색하며 '그건 예의없는 말이다.'라고 하면 상대는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장난일 뿐인데' 같은 식으로 변명하곤 했다. 재미있는게 아니라 분노하고 항의하는 내 반응에 당황한 상대의 반응은 자주 '사과'가 아니라 '네가 너무 예민하다'는 '남 탓'이었다. 나를 상처입힌 상대의 적반하장식 태도는 여러번 나를 입다물게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어떤 말도 더 해줄 애정같은 것이 내게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이렇게 섬세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이의 글은 내게 위안이 된다.


살아오면서 만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늘 자신의 진짜 의도가 드러났을 때, 비겁한 변명 뒤로 숨는 일을 종종 목격했다. 그런 이들은 뻔뻔한 가면을 쓰고, 자신의 '잘못 없음'을 항변하기 바빳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거나 하지않는 태도에 대한 문제는 나이와 관련이 없다.


요즘은 나 역시나 보다 많이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늘 되새긴다.

'실수는 할 수 있으나, 실수 이후의 태도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그리고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고의적 행동은 그게 어떤 정도의 것이건 간에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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