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매년 봄이 되면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 여행을 떠난다. 2017년부터 시작된 여행이니 올해로 5년차를 맞았다. (정확히는 2019년 유럽 때문에 횟수로는 4번째 여행) 보통 여행의 주 목적지는 광양 매화마을이고, 여행은 광양 주변의 구례, 하동 등 가보고 싶은 곳들 위주로 코스를 짜서 가는 편이다.
여행을 그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떠나는 편은 아니지만 '탐매 여행'은 다르다. 온 마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매화를 보기 위해 나는 매화가 많이 피지만, 다른 여행객이 비교적 적게 방문하는 시기인 개화 초기를 주시하여 여행을 떠나곤 했다. 때로는 너무 이르게 가서 개화가 절반 정도 진행된 매화 마을을 방문한 적도있고, 어떤 시기엔 때를 못맞춰 조금 시들해진 꽃을 보게되기도 했다. 하지만 '만족감' 면에서 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2월 말 떠났던 탐매여행에서 내가 만난 것은 이제 막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앙상한 매화나무들이 즐비한 황량한 동산이었다. 흰색, 분홍색, 선홍색 등 다채로운 색과 은은한 향기, 그리고 멀리서 온 손님을 맞아 전을 굽고, 국수를 삶아내는 마을주민들의 환대로 기분좋게 들어섰던 마을은 여전히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을씨년 스럽고 쓸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나는 왜 조금 더 꽃이 피길 기다리지 못했을까? 왜 다른 여행과 달리 이 봄 여행은 늘 초조한 마음으로 떠나오게 되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탓하다가 '익숙한 것 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왜 매년 봄이면 매화마을로 돌아올까?'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탐매여행이 긴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만나는 나만의 '의식'이라는 것이었다.
몸이 찬 편인 나는 유독 겨울이면 기분이 다운되고, 골골대는 편이다. 일조량과 기온은 나의 행복지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겨울은 춥고 낮이 짧으니 행복량은 절로 줄어드는 것이다. 겨울에도 눈 쌓인 대관령으로 떠나거나, 강원도의 겨울바다를 보는 등 나름의 멋과 경치를 찾아 여행을 가지만 사실 그것은 어두운 방에 촛불 하나를 켜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기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은 여전히 내게 무겁고 부담되는 계절인 것이다.
탐매 여행은 내가 봄의 초입에 들어서는 의식이기 때문에, 이 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봄에 어울리는 기분과 생각으로 갈아입는다.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는 누에고치처럼, 겨울이라는 고치를 벗고 봄에 어울리는 밝고 화사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빨리 '봄'을 만나러 떠나고 싶어 안달일 수 밖에. 그래서 늘 그렇게 초조했던 것이다. 어서 이 '겨울고치'를 벗어나고 싶으니까.
하지만 올 해의 '실패한 탐매여행'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서두른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회사 일때문에 한 주 늦춰도 좋았을 여행 일정을 당기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는 꽃이 이미 다 피어버렸을까봐, 내가 봄의 초입을 놓쳐버리고 봄의 한 복판에서 매화 마을을 찾게될까봐 초조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초조해서 빨리 떠난다 한들, 봄이 그 자리에 없으면 나는 여전히 탐매여행에서도 겨울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나는 내가 우기면 그 때가 얼른 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흐름을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에는 좀 더 '인내'를 가지고 봄을 만나야 겠다. 긴 밤 뒤에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충분한 밤 속에서 기다려야 반짝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삶의 굽이 굽이에서 떠올릴 수 있기를. 그리고 내년 매화 여행에서는 만개한 매화 속에서 활짝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