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 원의 행복

행복의 기준

by 희너지

아이들 방학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발이 꽁꽁 묶일 걸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콧구멍에 바람도 넣고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 아침을 챙기며 부랴부랴 갈 곳을 떠올렸다. 그러다 작년부터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곳이 생각났다. 그곳은 미술관이었다. SNS에서 종종 보던 곳이자 꼭 혼자 가고 싶었던 공간. 들뜬 마음으로 네이버에 오픈 시간을 검색했는데, 화면에 뜬 ‘오늘 휴무’라는 네 글자. 부풀어 있던 마음이 단숨에 쪼그라들었다.


이미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라 이대로 주저앉기엔 아쉬웠다. 어디든 가야겠다 싶어 아이들 등교하자마자 차 키와 책을 손에 쥐고 현관문을 나섰다. 목적지 없는 운전을 시작했다. 집 근처 스벅을 갈까, 조금 멀지만 한산한 카페를 갈까. 동네를 맴돌다 문득, 미술관처럼 ‘혼자 가고 싶었던 곳’이 하나 더 떠올랐다. 요즘 우리 지역의 핫플레이스, 바다 전망이 끝내주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사람이 붐빌 것이 자명하기에 혼자 가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까지 더해지니 내 마음은 더욱 출렁였다. 결국 ‘이른 시간이니 아직 괜찮겠지'라며 마음의 손을 들어주곤 운전대를 급히 돌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역시, 오길 잘했어.'


광활한 카페 주차장에 세워진 차는 단 세 대. 나의 예상은 정확했다. 이게 웬 호사인가 싶어 바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페 안 공기는 차가웠지만, 마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껴 읽던 책과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거기에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다 뷰까지. 이 조합만으로도 충만해졌다. 6천 원짜리 커피 한 잔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대단한 계획이 있던 하루도 아니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다 가진 기분이었다. 행복은 생각보다 단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신 셔터를 누르고, 짧은 영상도 남겼다. 며칠 뒤면 쉽게 누리지 못할 시간이란 걸 알았기에 추억할만한 사진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카페는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웅성거림과 웃음소리가 높은 천장을 채웠다. 이 큰 바다를 잠시나마 혼자 가진 듯 누렸던 단 두 시간. 짧았지만, 오래 남을 장면을 마음에 담은 기분이었다. 이제 막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풍경을 넘겨주듯,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전의 나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물건이 곧 더 큰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며 그 믿음이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요즘이다.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그 순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했다.


행복은 결국 태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순간에서도 기꺼이 행복이라 여길 줄 아는 마음. 급하게 찾은 카페에서, 늘 가고 싶었지만 미뤄두기만 했던 그곳에서 나는 오늘의 행복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충분했다. 이토록 평범한 두 시간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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