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술관을 가는 이유

혼자 있고 싶어지는 나이

by 희너지

이른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작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곳에 가기 위해서였다. 가고 싶다고 노래처럼 되뇌고, 다이어리에까지 적어두었으면서도 이제야 발걸음을 옮긴다. 휴직으로 바쁘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왜 그토록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는지는. 늦었지만 3월 복직 전에 꼭 한 번은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오늘에서야 출발했다.


집에서 딱 40분 거리에 위치한 그 곳은 바로 오아르미술관이었다. 가는 내내 고향을 향하는 듯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스쳐 지나가던 그곳은 휴대폰 화면 속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내 마음을 단번에 붙잡았다. 실제로 가면 어떤 기분일까.


겨울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빛만큼은 유난히 따뜻했던 1월의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선 미술관에는 말소리도,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진공 속으로 들어온 듯한 고요. 미술관의 하루를 내 손으로 여는 기분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공간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문화예술적 소양이 깊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않다. 유명한 작가의 이름도 모르고 그림을 잘 ‘본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가고 싶었던 걸까.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내가 오래도록 미술관을 동경해 온 진짜 이유를.


미술관에 들어서면 괜히 마음이 들떴다. 이곳만의 공기와 냄새, 적당한 습도와 온도. 잔잔하다 못해 파도가 하나도 없는 에메랄드빛 바다처럼 완벽하게 고요한 공간. 마치 아직 가보지 못한 우주 속에 홀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 정말 나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조용히 설레게 했다.


어릴 적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일상의 사소함까지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챙겨야 할 내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혼자이고 싶은 마음은 갈증처럼 깊어졌다. 조용하고 아늑한 미술관에 혼자 앉아 있는 이 시간은 그 갈증을 천천히 해소시켜 주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각자의 속도로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 이 공간이 내게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컸다.


미술관 카페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혼자인 시간을 사랑할까. 어쩌면 나는 ‘나’로 살아가는 인생보다 누군가의 보호자이자 누군가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인생에 조금은 지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역할을 해내느라 바쁘게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완전히 분리된 감각을 얻을 수 있기에 미술관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건 아닐까. 미술관은 내게 답답한 일상 속 숨통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 혼자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공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찾는 나만의 도피처 같은 곳. 나의 호흡대로, 나의 발걸음에 맞춰 아무 말 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게다가 이곳의 풍경은 마음을 더 깊이 머물게 했다. 경주 황리단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신라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의 가슴처럼 포근한 고분들이 줄지어 있고, 한겨울의 고분 뷰는 삭막하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멀리 보이는 한옥 지붕은 고즈넉함을 더해주었다.


두 시간 남짓 머문 미술관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충전하고 나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넬 에너지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킬 에너지를 말없이 채워주는 곳. 마음이 닳고 닳아 다시 가물어질 때면 나는 또 이곳으로 오겠지. 아무 말 없이 나를 들여보내 준 공간에게 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잘 있어. 다음에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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