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하늘에서 띄운 편지(1)
대필작가의 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하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요. 다행히 지금은 할아버지도 건강을 회복하시고 다시 집필을 시작하기로 하셨습니다. 저도 또 한 번 부지런해져야겠네요.
앞으로 얼마간은 할아버지께서 미국에 계실 당시 가족과 지인들께 보내셨던 편지를 옮겨 보고자 합니다. 국제 편지 한 번 주고받는 게 쉽지 않던 시대이다 보니 한 자 한 자 고르고 아껴 눌러 담은 이야기들. 바다 건너 누구와도 실시간 대화가 가능해진 요즘, 왠지 그리워지는 애틋함의 기록입니다.
보고 싶은 당신에게
오랫동안 편지 못해서 매우 궁금하였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말이에요. 안에 형님댁 다 안녕하시고 신당동 댁들과 4가집 댁들도 다들 안녕하시기를 이곳에서 축원합니다. 애들도 잘 놀지요? 나는 지난 7월 14일에 학교를 마친 뒤 15일에 애니스톤이라는 미국 남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2주일간 견학을 하고 지난 7월 31일 애니스톤 병기창을 출발해서 남미 각주를 구경하다 2일 전 이곳 내파(Napa)에 도착했어요. 잠은 미국인 친구 집에서 잤습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내 구경을 다니다가 우체국 앞을 지나기에 편지지를 한 장 사서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내파라는 곳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갈 예정이에요. 그곳에서 수속을 해주게 되어 있어요. 앞으로 약 일주일 후면 만날 것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신문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가 점점 잘 살게 되어 간다고 하니 매우 기쁩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도 집에서는 고생하고 있는 줄을 알아서 나만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하는 게 미안합니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170리가량 떨어진 과수원 지대입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대구와 같은 곳이지요. 요즘은 사과와 자두가 한창입니다. 빨리 돌아가서 식구들과 자하문 밖으로 자두 먹으러 가고 싶습니다.
여기저기 여러 곳을 다니니까 별의별 우스운 일이 다 있는데 한 가지만 적겠습니다. 4일 전에 옷이 더러워져서 세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요. 그래서 세탁집에다 옷을 맡기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근처에 마켓스트리트라는 번화가를 구경하면서 가노라니까 어떤 24, 5세가량의 미국인 여자 둘이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요? 좀 물어볼 일이 있다고 하기에 뭐냐고 했더니 자기들이 몇 달 전에 인도에서 돌아왔는데 커피 좀 사주지 않으려냐고 묻는 것이에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더니 좋아서 사주려는 줄 알고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런다고 해요. 내가 인도에서 온 줄 알고 골리려고 그러는 건가 싶데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그러면 1불만 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커피를 사주거나 돈을 줘야 할 아무 의무도 없다고 빨리 걸어서 딴 곳으로 갔더니 자기들끼리 무어라고 쭝얼대면서 서 있는 꼴을 보았습니다. 이 좋은 나라에도 이런 무리가 한 두 명이 아니에요.
이런 경험이 많으나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붓을 놓겠습니다.
내내 안녕들 하시기를 축원하면서, 빠이 빠이.
고향 하늘도 볼 수 없는 내파에서, 숙이 아버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