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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Nov 19. 2021

여기는 뉴욕이야요

이국 하늘에서 띄운 편지(2)

대필작가의 말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는 할아버지의 편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늘 '그리운, 보고 싶은'으로 시작하는 서두는 어떻고 할머니께 편지 봉투 쓰는 방법까지 그림으로 설명해 놓으셨더라고요. 제 기억 속 할아버지 모습은 엄하지는 않으셨어도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글을 정리하면서, 스윗가이(!)셨던 할아버지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시간이에요.




그리운 당신에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당신의 편지 9일에 반갑게 받아 읽었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아이들, 그리고 당신의 모습이 한꺼번에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특히 우리 렬이 펄펄 뛰며 우쭐대는 모습 언제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숙이 글씨 참 반가웠어요. 말 안 듣는다고 무어라 하지 말고, 말수 없는 숙이 아침마다 용돈 주어 학교에 보내세요. 살아보겠다고 애달 안달 하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애쓰지 말고 애들 고기라도 자주 사다 먹이기 바랍니다.     

 

 이곳에 오니 여자와 아이들의 호강하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군요. 앞으로 약 2달 반이면 돌아가게 됩니다. 7일(토요일)에는 뉴욕 구경을 단체로 갔다 왔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이고, 미국 내에서도 제일 큰 도시이며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곳이에요. 빌딩 꼭대기는 항상구름 위에 있었어요. 65전 내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니 전 시내가 다 눈 아래에 보였습니다.      


 유엔 의사당도 들어가서 구경했습니다. 안내인에게 한국에서 온 물건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본 것이 없다고 말할 때 섭섭하더군요.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큰 종각과 종을 해두었던데. 처음에 그곳으로 안내를 받았어요. 일본에서 온 종이며 이런 것은 자유를 상징한다고까지 설명해 주더라고요. 한국인의 존재를 몰라 주는 데는… 여기는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자도 있어요. 그들은 무식한 자이지만…  이 뉴욕이란 곳은 물가가 딴 데보다 비싸고, 불량자가 많고 시내도 지저분한 도시였습니다. 장사하는 자들을 몇 만나보았는데 우리 한국인을 골릴라고 애를 쓰는 것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네가 아직 한국사람을 몰라보는구나! 하고…      

 

 그리고 허드슨 강이라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강에 가서 관광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배에서 어떤 부부를 만났는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어요. 우리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왔지요. 우리 미국에서 한국에 원조 물자가 가면 골고루 혜택을 받느냐, 또는 한국의 가족제도는 어떠냐고 물어왔어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물어왔는데 내가 우리 가족제도는 여자가 남편한테 무엇이든지 순종해야 했고 애들 성도 아버지 성을 따라야만 했다고 말했더니 그 여자가 있다가 하는 말이 “나는 그런 것을 좋게 생각지 않아요”하고 홱 기분 나빠하더군요. 남자는 빙그레 웃고요. 그래서 내가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법률로써 남녀의 권리가 똑같을 뿐 아니라 애들의 성도 어머니를 따를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고 했더니 금세 좋아하면서 Good, good 하더군요.     


 포목점에 들렀더니 마침 쥐색 양복천이 있어서 6 15전을 주고 끊었는데 3마입니다. 어머니 해드리려고 끊었는데 어떨는지 의문입니다.  마에 2  먹었습니다. 렬이 작년 가을인가 백화점에서 6,500환인가 주고  입혔던 색인데   두터워요. 일본 가다가  좋은  있으면  가지고 가겠습니다.


 신당동 댁들과 을지로 4가 댁도 다- 무고들 하시지요? 그리고 정숙이네와 황 씨도 다 무고하시고요. 편지를 받아보니 여기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처럼 썼는데 요행이도 왔어요. 요다음에 편지할 적엔 이곳 주소 그대로를 자리만 바꿔 놓고 왼 첫머리 이곳 주소에다 ‘To’라고만 쓰면 되어요.      



 아무쪼록 애들 데리고 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곳은 음식값이 엄청나게 비싸요. 한 끼 잘 먹으려면 2달러 50전 가량 들어요. 우리 돈으로 약 3,700환 가량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데는 하루에 약 1불로 방값이 14불, 잡비가 약 10불 해서 약 55불가량 듭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잘 있다고 말씀 올리세요. 팔월 초순에 돌아가게 될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끊겠습니다. 나는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양 부대에 있는 미군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매우 친절했기에 그 사람한테 편지를 했어요. 언제 혹시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혹시 찾아가거든 잘 대접해 주세요. 극장이든 커피든 간에 아마 하우스뽀이나 누굴 데리고 갈 거예요.     


나의 걱정은 조금도 마십시오. 아무 고생도, 불편도 없이 지내고 있어요.     


5월 10일 아침, 숙이 아버지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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