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중딩 아들이 기어코 수학숙제를 하고 자야겠단다. 학원 단톡방에 숙제를 올리지 않으면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다고 한다. 밤 8시부터 10시까지 과학학원에서 머물다 와서 피곤할 텐데 야단맞기는 싫은가 보다. 덕분에 나도 강제 불침번중이다. 아들 핸드폰은 반납시키고 자야겠다. 눈이 감긴다.
아들이 수학문제를 풀면서 묻는다. "왜 엄마 카톡프사에는 아무 사진도 없고 이름도 점(.)이야?"
학원 원장님으로부터 "엄마 카톡 찾느라 고생했다", "그런 프사는 처음 봤다", "제발 프사 좀 바꾸게 하라"는 말을 들었단다. 오랜만에 내 프사를 확인해 보니 진짜 점(.) 하나다. 멀티프로필을 쓰고 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없고 오픈용 프사는 점이고, 가족용 프사에 이름은 있다.
아들이 내 카톡 프사에 "오만가지 자랑"을 해놓으란다. 그래서 자랑할게 뭐가 있냐고 되물었다. 의미 심장하게 한마디 던진다.
"아들하고 딸 있잖아!"
헉. 이거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다. 프사가 점(.)인 이유는 진짜 점이 되고 싶어서였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한다. 학원선생님이 나를 찾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니, 이름 있는 멀티프로필 쪽으로 선생님을 옮겨 본다. 가족 외에 이름 있는 쪽으로 안 옮기는데 나름 신경 쓴 거다.
퇴근하고도 보고서 쓸 일이 많아 스터디카페에 자주 간다. 극내향형인지라 그곳에서도 아무도 몰랐으면 한다. 화장실 갈 때도 45도 아래를 보고 걷는다. 로비에 사람이 있으면 웬만하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물 마시러 갈 때에도 물컵만 본다. 기억이나 잔상을 남기지 않고 작업에 몰입하고 싶기 때문이다.
극내향형인 나를 어렵게 만드는 분이 계신다. 스터디카페 여사장님이신데 연세는 60대 후반 정도 되신다. 매일 밤 8시 30분쯤에 남편분과 스카에 오셔서 청소하고 새벽에 귀가하신다. 가끔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였다. 어느 날부턴가 집에 가려는데 텃밭에서 가지 열매를 따왔다며 주신다. 어느 날은 고구마 맛탕을 해왔다며 주신다.
오늘은 아들 학원 픽업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밤 10시에 스카를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실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오려고 했다. 실내화도 갈아 신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사장님께서 급히 나를 불러 세우신다. 어제도 나를 만나려고 공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잠깐 빗자루질하는 사이에 가버렸다고 하신다. 오늘은 다행이라며 보냉 가방에서 주섬주섬 수제 샌드위치를 꺼내신다. 농사지은 고구마를 으깨 만들었다며, 만나서 다행이라고 하신다.
귀가해서 애들에게 샌드위치 좀 먹으라고 하니 안 먹는단다. 빠른 시일 안에 먹어야겠다.
이미 점인 내가 오늘도 브런치에 점을 찍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