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뒤에 숨기
아이들의 개학이 코앞이라 약간의 불안감이 있다. 다시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첫째는 중3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중3 - 2학기의 엄마는 처음이라 갈팡질팡한데 태연한 척하고 있다.
오후에 무작정 가방을 쌌다. 물 1병, 책 1권, 충전기를 담았다. 4시간 정도 잠실방향으로 걸을 생각이었다. 집을 나선 지 조금 지나자 어지럽고 얼굴이 하얘진다. 아프다. 다시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잤다. 낮 시간에 자서 그런지 지끈지끈하다. 가족은 모두 서울 시댁에 놀러를 갔다. 좋긴 한데 머리가 아프다. 이런 상태에서 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텃밭.
텃밭에 가서 노동을 하기로 했다. 이미 사부작사부작 일을 해놓았기에 할 일이 없다. 그래도 하나씩 일을 만들어서 해본다. 시금치 씨앗 뿌려놓은 곳 발아 여부 확인하고 비닐 예쁘게 뜯어주기, 상추 시든 잎 떼어버리고 조심스럽게 물 주기, 고추와 잎들깨의 곁가지 떼어내기, 꽈리고추 수확하기, 고구마 줄기 수확하기.
10월 중순쯤 고구마를 수확하는데, 가을 고구마순은 미끌거려서 김치를 담아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야들야들 부드러운 고구마순 김치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씻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역시 처음 만들어 본 사람처럼 기도하는 마음이다.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맛있는 레시피를 찾아 이리저리 검색해 본다. 매번 레시피를 찾지만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아무래도 고구마순 김치는 아랫지방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기에 요리 유튜버 중에 전라도 분인 "아따 할머니"의 레시피를 참고해 본다.
소금물에 고구마순을 데쳐 껍질을 벗기는 동안 TV로 유튜브 세 편을 봤다. 아마 '게으름, 무기력' 등으로 검색어를 넣어 찾은 영상들일 것이다. 세 편 모두 나를 위한 특강 같았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내 인생이 꼬였을 때 오히려 좋은 이유', KAIST 물리학과 김갑진 교수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딱 한 번만 미쳐보세요',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정신과 의사가 강력하게 제안하는 100% 성공하는 법'을 보았다.
더 이상 성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성공'은 원하지 않지만, 게으름에서는 벗어나야겠다. 연출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 적절한 조언들이었다.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덕분에 고무마순 줄기 벗기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아따 할매'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려 노력했으나, 파가 없어 고추 한 개를 아주 얇게 어슷 썬 걸로 대체했다. 고추가루 1컵을 넣으라고 했으나, 3/4컵만 넣어본다. 그리고 배, 사과를 추가하라고 했으나 설탕 3스푼으로 대체해본다.
고구마순 줄기, 부추, 풋고추, 말린 붉은 고추, 양파는 텃밭표이며, 고춧가루는 시골 방앗간에서 1년에 1회 구입해서 사용한다. 김치를 다 만든 후에 맛을 봤는데, 상온에서 숙성시키지 않아도 될정도로 맛이 있었다.
최근 빨갛게 익은 고추를 건조기에 조금씩 말려서 냉장실에 보관했다. 말린 빨간 고추가 김치에 들어가면 그 풍미가 짙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텃밭 고추가 빨갛게 익을 때마다 모아서 태양초로 말려야겠다.
<고구마순 줄기 김치 재료>
1) 핸드믹서에 갈 재료
멸치 액젓 8큰술, 물 1/2컵, 새우젓 3큰술, 양파 1/2개, 밥 5큰술, 말린 고추 6개, 마늘 8개
2) 채소 재료
쪽파 한 줌(풋고추 1개로 대체), 부추, 양파 1/2개
3) 고구마순 줄기 데쳐 껍질 벗기기
가) 고구마순의 머리를 옆으로 떼어내며 1차로 껍질 벗기기
나) 끓는 물에 소금 넣고 고구마줄기를 넣어 짧게 데쳐 찬물에 헹구기. 찬물에 5분 정도 담가 놓기
다) TV 보며 껍질 벗기기(머리 부분에서 껌질 한번 벗기고, 가운데 허리를 잘라서 양쪽 껍질을 벗기면 쉽게 벗겨짐)
라) 물에 헹궈 채반에 받쳐두기
4) 버무리기
3)에 1)과 2) 그리고 설탕 듬뿍 3스푼을 추가하고 버무리기. 깨뿌려 냉장고에 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