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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해보겠습니다] 삼겹살집 가서 혼밥하기(2018)

by 브라보


혼자 먹는 걸 정말 싫어했다. 근데, 딱 한 번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 억지로 먹었던 적이 있다. 그때가 6-7년, 혼자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빠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뜨거운 여름 날씨 덕분에 현기증까지 났었다. 아무래도 연극이 끝날 때까지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뭐라도 먹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는 햄버거.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햄버거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먹는 내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봤는데, 영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검은 눈동자는 화면을 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흰자로 모든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었다. 햄버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어 버리곤 뛰쳐나오듯 나왔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서 그런지, 진이 다 빠졌었다.



그 후부터 혼자 먹어본 적이 없다. 먼저 상상을 해봤다. 혼자 앉아서 고기를 구우면서 밥을 먹는다… '하…안 될 거야……' 하며 좌절했지만, 내 손은 '삼겹살 맛집'을 검색하고 있었다. 한참 보던 중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수요 미식회에 나왔고, 연예인 전현무 님의 단골 삼겹살집! TV에 나온 곳 중에 진짜 맛집 찾기 힘들다지만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내가 갈 삼겹살집이 정했다. 가기로 한 날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도 굶었다.



위치는 동대문 옆 신설동이었고, 찾아보니 같은 동네에 지점이 무려 3개나 있었다. 기대치가 좀 더 올라갔다.


드디어 신설동역 도착! 지도로 1호점을 찾았더니 전철역에서 6분 거리라고 떴다. 발걸음이 빨라졌고 설레기까지 했다.



오…보인다 간판!



간판을 보면서 가게 앞으로 다다른 순간 갑자기 설렘이 떨림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보였다. 동공 지진…


저녁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무조건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는 블로그 포스팅을 봤었다. 혼자 자리 차지하기가 민폐일 것 같아, 일부러 낮 시간에 간 거였는데…(라고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람 없을 시간을 골라옴) 와… 근데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부끄럽고, 쑥스럽고, 민망하고 모든 감정들이 다 튀어나왔다. 그렇게 1호점을 나도 모르게 지나쳤다. 몇 걸음 안가, 다시 용기를 내어 뒤돌아, 또 가게 문을 향했지만 또 지나쳤다.


'아악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잖아!!'


하고 다시 뒤돌아 성큼성큼 가게 문 앞을, 또 쓱 지나쳤다. 속으로 다시 '아아악'소리쳤다. 젠장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아 맞다! 2호점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2호점을 얼른 검색했다.



한 10분 정도 거리에 2호점이 있었다. '거기는 사람이 좀 덜 하겠지'란 기대감으로 서둘러 찾아갔다. 저 멀리 2호점이 보였다. 너무 더웠다. 빨리 들어가서 물 한 컵 마시고 싶은 생각에 냉큼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호점 도착! 와 사람 하나도 없어! 신났지만 그것도 잠시, 오픈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고 실망감과 소름이 같이 올라왔다. 꼼짝없이 1호점을 가야 하는구나… 한숨을 내쉬고 다시 터벅터벅 1호점을 향해 걸었다. 1호점에 다 와 가던 중 문득, 3호점까지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바로 지도검색.


오오! 3번째 지점으로! 그리고 벌써 세 번째 간판 구경!


저 멀리 3호점이 보였고, '그래 바로 들어가는 거야!'양손 파이팅을 하고 3호점 앞을 지나는데, 생각보다 꽤 넓고, 드문드문 사람이 있었지만 많진 않았다. 그런데 내 발은 왜 멈추지 않고 걷고 있는 거냐고… 나는 가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왜 직진을 하고 있는 건가…


웃음이 났다… 내 스스로가 웃겨서 흐흐흐 거렸다. 그렇게 직진을 하다 보니 개천이 있더라.


꼭 개천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난간에 팔을 걸쳤다. 흐르는 물을 보며 내 멘탈도 함께 붕괴되고 있었다. 마침 물 사이로 오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 저기 오리가 있네. 오리가 헤엄치네. 엇 오리가 땅으로 올라가네. 오리가 오리발로 걷고 있네. 신기하다…'


라며 영혼 없는 오리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 오리마저도 다리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때마침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해가 아주 쨍쨍하게 빛을 쏘아주었고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이제는…, 이제는 정말 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고민해야 하는 건가…자괴감이 들려 했지만


'아니! 내겐 포기란 없지'

라며 한 손으로 파이팅을 소심하게 했다. 그래! 가는 거야 굳게 마음먹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신 있게 문을 활짝 열고 진짜! 들어갔다! 들어가니 문 앞에 직원분이

"몇 분이세요?"

라고 묻는다. 당당히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고

"한 명이요!"

라고 말했고, 직원은 살짝 당황스러워하더니

"어우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라며 양손을 벌리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디로 앉을까 잠시 서서 고민했다. 좌식에 발을 뻗고 편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좌식으로 가자!' 신발을 벗고 좌식으로 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바로 삼겹살 1인분과 공깃밥을 주문했다.


"엇 저희는 1인분은 안되고, 2인분부터 됩니다. 2인 기준이라서요"

라고 미안한 듯 말했고,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메뉴판 그램 수를 보니 150g밖에 안되길래 쿨한 척


"네 그럼 2인분이랑 공깃밥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을 했다.


들어오기만 하면 반은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주문까지 했다니! 살짝 감격하던 와중에 직원분이 밑반찬과 고기를 가져왔다. 자 이제 구우면 되나 했는데 직원이 안 간다. 집게를 들고 서있다. 왜 안 가지 눈이 커져 쳐다보니,


"아 저희는 고기를 직접 구워드립니다" 하고 멋쩍게 웃으신다.


속으로 '네에게??? 이렇게 어색하게 고기를 구워주신다고요??'


어떻게 보면 혼자 고기 굽는 것보다, 구워주는 게 덜 창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아니, 되게 민망하다. 나는 그 민망함을 견뎌내 보고자 먼저 말을 걸었다.


"혼자 와서 밥 먹는 사람 있어요?"라고 애써 밝게, 내 목소리보다 좀 더 높은 톤으로 물었다.


"아이 그럼요! 근데 대부분 식사를 하시지 고기는 잘 안 드시더라고요"

라고 헤헤 웃으며 얘기해 주셨고 나는 대답을 ,


"아~ 아하하! 다행이네요"라고 했다.

아무 말 대잔치.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 그 뒤로 대화는 끊겼다.


앞에서는 열심히 통 삼겹을 구워주셨고 나는 구경했다. 역시 전문가라 달랐다. 고기가 아주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다 익어 갈 때쯤, 인증숏을 남기고 싶은 맘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직원분의 삼겹살 굽기 스킬은 더 현란해지고 있었다. 마늘까지 알맞게 구워주시더니 고기 한 점을 내 앞접시에 놔주셨다. 그리고선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먹는지 설명해 주셨다.


"고기를 소금에 우선 찍으시고, 고추냉이를 올려서 드셔보세요. 양파절임과 목이버섯 절임은 기호에 맞게 드시면 되고, 파김치는 쌈으로 드실 때 아주 맛있습니다"

라며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고, 드디어 어색한 시간도 끝이 났다.


'오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삼겹살은 처음인데' 왠지 기대가 됐다. 알려주신 대로 한입 먹어보았다.

아 육즙…맞은편에 누가 있었다면 쌍따봉을 세 번 내밀었을 맛이었다.

'와 진짜 맛있네'

한 점 두 점 세 점 네 점 다섯 점.

딱 다섯 점 정도 먹을 때까지 좋았다. 맛있었고 재밌었다. 그런데 다섯 점 이후부터 전투력이 점점 상실되기 시작했다.


'혼자 먹기 아까운 맛'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맛있는 건 같이 먹으면서, 맛에 대해 평가도 하고 "오 이렇게 먹으니까 더 맛있어" 하면서 더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서로 터득하고, 하하 호호 즐거운 이야기와 함께 먹어야 더 맛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니 입맛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2인분, 2점 남기고 다 먹었다. 입맛 떨어진 거 치고 공깃밥도 반이나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아까 창피해했던 게 웃겼다. 나한테는 극한의 일이었던 혼자 먹기를 삼겹살로 해내고 나니, 앞으로 뭐든 혼자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삼겹살 아래로는 이제 껌이야'라는 생각도.


그렇게 삼겹살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래도 혼자 먹기는 너무 심심하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이게 웬걸, 삼겹살 이후로는 밥집에서 혼자 먹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출입문을 들어서는 것도, 주문하는 것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고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젠 혼자 맛 평가도 하고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실험도 한다. 혼자 먹어도, 맛있는 건 진짜 맛있다.

<고깃집 혼자 오기> 도전은 대성공이었고, 이로써 만렙 쭈구리는 어느 정도 탈피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

혼자서도 어색한데 구워주는 곳을 가면 얼마나 어색하게요~?


그래도 전문가님의 스킬 덕분에 맛은 보장되니 어떻게든 견뎌 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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