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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해보겠습니다] 크리스마스에 혼술하기(2018)

by 브라보 Feb 03. 2025


빨간 날을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쉬는 날이라 너무 좋지만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수시로 당하는 어깨치임과 발 밟기는 간단한 사과조차도 못 받을 때가 많다. 잠잠하던 화가 막 치밀어 오를 때마다 집에 있을 걸 후회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더더욱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획대로 열심히 뒹굴뒹굴하며 핸드폰을 하다가, 인스타그램 둘러보기를 눌렀다. 쭉쭉 구경하던 중 눈에 띄는 해시 태크를 발견했다.



#혼술집#혼술하기



'어 혼술 나도 해보고 싶은 건데..'라는 생각과 함께 내 손가락은 [#부천혼술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날 잡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검색하던 중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집과 아주 가까웠고, 주문방법도, 인테리어도 혼술 하기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언젠가 날 잡고 가야지'라는 마음은 '오늘 당장'으로 바뀌었고 가게 오픈 시간인 6시가 되길 산타 할아버지 기다리듯 기다렸다. 점점 다가오는 시간에 맞춰 씻고 준비를 했다. 너무 6시 땡 하고 들어가면 쑥스러우니까 살짝 지나서 가고 싶었다. 천천히 시간을 때우며 7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가기 전 위치를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고 찾아가기 어렵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독서실 같은 테이블이 길게 두 줄로 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개인 커튼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인테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인데 계산도 자동판매기로 하게 되어있어 전혀 어색할 겨를이 없었다.


자동판매기에서 내가 원하는 자리를 먼저 지정한 후 메뉴를 고르고 계산까지 하면 음식을 직접 자리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안주는 생각보다 많았고 가격대는 높지 않았다. 술은 맥주, 소주, 사케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를 보며 한참 고민하다가 안주로 야끼소바, 술은 병맥주를 골라 계산한 후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정리하는데 커튼이 열리더니 손이 쑥 하고 들어왔다. 물과 티슈를 주시며 반가운 눈인사와 함께 커튼이 스르르 닫혔다. 깜짝 놀랐지만 침착한 척 눈인사를 했다.


물을 따라 마시면서 구석구석 구경을 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핸드폰 기기를 배려한 세 종류에 충전기가 있었고, 커튼 아래쪽에는 간단한 안내 문구가 붙어져 있고, 양쪽에 가리개는 3단으로 접히기도 했다. 아마 두 명 정도는 같이 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해서 눈빛으로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피커…마샬…부러워요. 사고 싶어. 나도 좋은 스피커 갖고 싶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구석구석 구경하던 중 음식이 나왔다.


야끼소바와 맥주,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뚱뚱이 바나나우유까지 주셨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나온 뚱뚱이 바나나우유.


'산타 할아버지가 여기 계셨네'라며 눈물을 흘릴 뻔했으나 그것도 마음속으로…



감격도 잠시 야끼소바 비주얼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간장소스로 볶아진 향긋한 소바위에 하얀 소스가 지그재그로 뿌려져 있고 그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라 간 반숙 계란프라이. 완전 제대로다. 프라이를 살짝 옆으로 밀어낸 후 면을 소스와 버무리는데 주먹만 한 새우와 손바닥만 한 고기들이 보였다. '사장님 거덜 나시는 거 아닌가요'라며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들으셨으려나.



소스와 고루 버무려진 면을, 잘 볶아진 양배추와 함께 한입 먹었다. 평소에 익은 채소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닭갈비에 들어 간 양배추도 잘 안 먹는다. 근데 여기 사장님이 해주신 양배추라면 밥 한 공기도 뚝딱하겠다. 어느 재료 하나 간이 안 베인 곳이 없이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었다. 양도 아주 많아 배가 부를 즈음에는 남기기 아까운 새우와 고기만 쏙쏙 골라 먹었다. 그렇게 안주를 다 먹어 갈 때쯤 맥주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아 맥주' 하면서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를 식사하듯 먹을 때와는 달리 맥주를 마시려니 자꾸 핸드폰에 눈이 갔다. '내가 이러려고 여길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가방 속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있는 책과 노트를 꺼냈다.


책을 읽으려니 뭔가 안 읽히고, 노트에 낙서만 끄적끄적 거리다 일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2017년. 내가 살아온 30년 중 정신적으로 가장 괴로웠던 시기. 이 한 해를 정리하는 일기를 써야겠다.


2017.12.25 "크리스마스"로 시작한 일기는 공책을 한가득 채웠다. 다 쓰고 나니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일기가 나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내가 받은 만큼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자며, 행복에 겨워 살자 다짐했다. 갑자기 엄청나게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 울컥했지만, 울진 않았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온 혼술집에서 2017년 마무리 일기라니…이상하고 신기한 일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예수님 생일인데 내 생일인 것처럼 행복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른 사람과 눈 마주치면 조금 떨림)


독서실에서 술 마시는 기분입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술 한잔하는 건 왠지 몸에 이로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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