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혼밥 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삼겹살집 들어가는 게 가장 어렵다>를 도전한 이후로는 조금 쉬워졌었다. 배고프면 지나가다 김밥천국에 들어가 제육볶음을 먹는 일도, 잔치 국숫집에 들어가 잔치국수와 순대를 먹는 일도 눈치 보지 않고 잘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곳에는 항상 혼밥 하는 동료(?)들이 많아서 더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서도 혼자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감이 안 왔다. 관건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조금 구석자리를 차지한다면, 눈치 보지 않고 잘 먹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은 웨이팅이 걸리면 나오는 데로 앉아야 한다. 그러니까 조금 한가한 시간대로 가고 싶다는 꼼수 아닌 꼼수를 부리고 싶었는데 내가 일하는 시간대는 오후 2시-7시다. 일이 끝나면 남들도 같이 퇴근하는 시간이었고, 어떻게든 한가한 시간대로는 가기 힘든 여건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기적(?) 적인 찬스가 생겼다. 회사 동료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내가 오전 근무로 바뀌는 날이 생겨버린 것이다! 우히히 평일에, 그것도 점심시간에 갈 수 있다니. 이게 무슨 행운이람.
오전 근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마치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패밀리 레스토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애슐리를 향해 가장 빠르게 걸었다. 드디어 애슐리가 있는 건물로 들어섰고, 애슐리가 있는 4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4층 도착. 애슐리를 향해서 설레는 마음을 앉고 걸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애슐리. 점점 다가갈수록 웅성웅성, 시끌시끌.. 그리고 입구 앞에 당도했을 때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웨이팅 순서를 보니 족히 30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꼼수를 부리려다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생각해 보니 점심시간이구나.. 평일이어도 점심시간에는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다는 걸 왜 생각 못 했을까.. 정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쉬워 우선 웨이팅 예약을 걸어놨다. 예상시간은 35분. 나는 그 앞 소파에 앉아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읽기 시작한 지 한 10분 지났을까.. 졸음이 밀려왔다. 배고프고 졸리고 긴장되고 무섭고. 이게 뭐람. 나.. 잘 먹을 수 있겠지.
예상 시간보다 더 시간이 흘러 40여 분 정도 흘렀을까. 내 앞 번호가 들어가는 걸 들었다. 나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볼까 하면서 난 왜 집에 가고 싶은 걸까.. 아 무서워. 밥 먹는데 왜 무섭지..
드디어 내 번호가 불리고 안내받은 자리로 갔다. 테이블이 참 다닥다닥 붙어 있네.. 지정받은 자리는 25-30 테이블이 모여있는 곳이었고 나는 벽을 보고 앉을까... 하다가 용기를 내 사람들이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벽을 보고 앉고 싶었지만, 뭔가 지는 기분이 들어 바꾸지는 않았다. 가방과 외투를 벗어 놓고 얼른 자리를 빠져나와 음식을 가지러 갔다.
음식을 고를 때는 모든 사람들이 혼자다. 외롭지 않았다. 음식들을 보니 행복했다. 그중에 생선으로 만든 라따뚜이를 보고 눈이 뒤집어질뻔했다. 한 그릇에 가득 푸려다가 스스로 진정시키며 먹을 만치 그릇에 옮겼다. 슬슬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담았는데, 난 왜 자리로 돌아가기 싫을까.. . 음식을 다 담고 탄산음료 한 잔을 들고 자리로 갔다.
자리를 앉으면서 내 옆 테이블 사람들을 곁눈질로 탐색했다. 오른편에는 아주머니 두 분, 왼편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에 여자 두 분, 앞에는 커플. 아주머니들은 어떤 걱정이 있으신지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내 앞 커플은 서로 먹는 모습이 좋은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 왼편에 있던 여자 두 분은 내가 음식을 가지고 테이블에 놓는 순간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테이블에 그릇 하나, 컵 하나, 수저세트 하나. 내려놓고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데 온몸이 굳은 느낌이었다. 목부터 시작해, 손 마디마디까지 뻣뻣해지는데, 지금 생각하면 로봇이 움직이는 느낌이었을 것 같았다. 정신없이 인증 사진을 착착 찍고, 눈 뒤집힐 뻔한 라따뚜이를 한 입 딱 먹으려는데 왼쪽 테이블 여자분이 아주 작은 소리로 "혼자 왔나 봐"라로같이 온 일행에게 얘기하는 게 들렸다. 정말 못 들을 만큼 작은 소리로 해주신 것 같지만, 나는 지금 온갖 부끄러움으로 예민함을 장착한지라 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혼자 왔나 봐"를 들은 순간, 나는 얼굴에 뜨거운 열이 오르고 있었다. 거울을 안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겠지.
속으로 마인트 컨트롤을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잘 먹을 수 있지 고혜정. 잘할 수 있어 고혜정.'하면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잡고 입으로 가져가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 손이 왜 떨리는 건데 왜...'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고 씹으면서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되는 게 느껴졌다. 지금 나의 안면 근육은 내 소유가 아닌 듯이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다가 체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면서 일부러 음식들을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참고로 음식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 혀에 감각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천천히 씹고 있는데 목이 막히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온 거라고는 음료뿐. 국이 필요한데, 거참 엉덩이 떼는 게 왜 부끄럽냐고. 왜.
목이 막히는 걸 꾸역꾸역 참으며 드디어 첫 번째 그릇을 클리어했다. '이제 국 뜨러 가자!'라고 속으로 외치며 두 번째 그릇을 담으러 일어났다. 두 번의 목만 힘은 없다. 미역국을 가득 떠서 자리로 가져다 놓고 맛있었던 라따뚜이와 치킨, 오리고기, 마파두부를 담았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행복했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식사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몇 분 정도 같이 앉아서 먹었다고 양옆에 사람들이 편해지기라도 한건 가. 아까보다는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는데 문득,
'아 이 사람들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면 혼자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또 놀랄지도 모르니까. 살짝 양옆 테이블의 식사 템포를 엿봤다. 아직 식사 타임이군. 그러니 나도 세 번째 접시를 시작해 볼까.
두 번째 빈 그릇을 한쪽에 밀어두고, 세 번째 그릇에 음식을 담으러 갔다. 이쯤 되면 소화가 잘 되는 양배추를 먹어줘야지. 하고 양배추 샐러드를 한편에 담았다. 그리고 첫 번째, 두 번째 식사에서 맛있었던 음식들만 골라 접시에 담아 자리로 왔다. 세 번째 앉으니까 이젠 양옆 분들과 같이 온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회식 같은 느낌이랄까. 회식에서 시간이 지나 따로 놀기 시작하는 분위기 같았다. 왠지 마음도 편해지고 소화도 잘 될 것만 같았다.
내 오른쪽 아주머니들은 각자 집안에서 있는 고충들을 얘기하시는 듯했고, 왼편 여자 두 분은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거 참, 안 들으려고 해도 테이블이 너무 가까워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음식에 집중을 해봐도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져 음식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막 하소연을 하다가 "이거 봐봐 어떻게 생각해?" 하며 남자 친구와 나눈 카톡 대화를 친구에게 보여주는 듯했다. 아 진짜 궁금해서 나도 보여달라고 할 뻔.
흥미진진한 와중에 세 번째 그릇이 끝났다. 이제 배도 부르고 후식을 먹을 차례가 된 것 같았다. 네 번째 접시에는 과일과 케이크를 떠왔다. 분명 맛이 없어 보였지만 케이크니까 먹는다!라는 마음으로 떠온 케이크가 생각보다 맛있어 놀라는 와중에 왼쪽 테이블 여자 두 분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왜 내 마음이 급해지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 입은 케이크와 과일을 빠른 속도로 씹고 있었다. 그때 가방을 챙겨 나가는 왼쪽 테이블 사람들....
'자.. 잠깐만!! 같이 나가요!!'라고 소리칠 뻔. 나가버렸다.
휴- 친구가 나만 버리고 간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왜 밉지. 그 와중에 케이크는 맛있었다. 남아 있던 케이크 하나와 망고 한 조각을 천천히 씹으면서 점점 비어가는 테이블들이 보였다.
가장 붐비던 시간들이 지나고 한가해진 자리들을 보면서 '그래도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손이 덜덜 떨렸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망고를 씹고 있다. 분명 아까는 음식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 망고는 왜 이렇게 달까. 이제 막 음식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내 배는 우리 동네 뒷동산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불러져 버렸다.